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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잠자기> - 정재은 감독
2002-11-18

<거칠게 잠자기>

네덜란드/ 2002년/ 84분/ 감독 유제니 얀센

20일 오후 8시 메가박스 6관

작년 1월말 나는 첫 장편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들고 로테르담영화제에 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로테르담영화제가 신인감독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화제라는 얘기를 해주었지만 나에겐 현실감없는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난 영화나 많이 보리라 마음먹고 영화제 내내 여러대륙의 신인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지냈다. 사실 네덜란드나 로테르담에 대해선 솔직히 별로 관심가져본 일이 없었지만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영화 한편 보는 것도 괜찮지 싶었다. 그렇게 선택해서 보게된 영화가 유제니 얀센 감독의 <거칠게 잠자기>였다.

이 영화 역시 <고양이를 부탁해>와 마찬가지로 로테르담영화제의 경쟁부문인 타이거상의 후보이기도 했다. 난 영화를 보고 ‘이 영화에게 타이거상이 돌아가겠군’이라고 속으로 예측했었다. 감독의 영화속 인물들을 보는 어른스러운 시선과 관찰자적인 접근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의 예상대로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후후후….

이 영화는 심술많고 뒤틀린 자아를 가진 퇴역군인 할아버지와 소처럼 슬픈 눈을 가진, 수단에서 온 흑인 소년이 조금씩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거의 과장없이 끌고나간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그 못된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덜란드나 로테르담에 대해서 잘알지는 못하지만 그들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만한 인생을 살고있는 것이다. 몇몇 장면들이 떠오른다. 푸른초원에서 커다란 젖소의 목을 끌어안은 흑인소년의 얼굴표정, 병원에 문병 온 친구들에게 심술부리던 노인의 표정, 커다란 창으로 소년이 있는지를 몰래 내다보던 노인의 뒷모습 같은 것들….

며칠후 나는 식사 자리에서 감독인 유제니 얀센, 그녀를 만났다. 나는 그녀의 작품이 좋았다고 인사했고 그녀도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았다고 인사했다. 우리는 잠시 영화 만드는 방식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쪽에서 일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은 거의 아마추어라고 했다. 난 주로 아마추어배우들의 연기 연출의 비결에 대해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착한 미소로 웃기만했다. 난 바로 이 착한 미소가 연기 연출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했다. 후후후…. 내가 암스텔담에서 며칠 놀다가 영국에 친구를 만나러 놀러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선뜻 암스텔담에 오면 공짜로 재워주겠다며 웃는다. (으윽 그때 주소만 받았어도 밤늦은 암스텔담에서 싼 숙소를 찾아 온 거리를 헤메이진 않았을 텐데….)

그녀의 영화는 영화제와 텔레비전을 시장으로 보고 만들어진 영화라고 느껴졌다. 한국에서 영화제가 아니라면 그녀의 영화를 보기 어려울것이다. 이 영화는 조용하고 사려깊은 미소를 가진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파티를 즐기러 가기 전에 보는 것보다 광란의 파티를 마치고 혼자 집에 가는 길에 보면 더욱 좋을 영화이다.

정재은 감독 - <고양이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