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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와 함께 한 <오아시스> 마스터클래스
2002-11-18

오아시스에 빠지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로 PIFF광장이 한참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던 16일 오후, 남포동을 살짝 벗어난 을숙도 문화회관에서는 진지한 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SK텔레콤에서 주최한 ‘UTO마스터클래스〈오아시스〉’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이창동표 영화 매니아들이 이 곳에 모여든 것이다. 〈오아시스〉는 어눌하고 무능력한 전과자인 종두가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공주를 만나 초라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싹틔우는 이야기로, 200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연기상을 받은 수작이다.

1부 시사회가 끝나고, 검은 장막이 걷히면서 이창동 감독이 나타나자 객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곧 사회를 맡은 영화평론가 심영섭씨의 인사말로 2부 마스터클래스가 시작되었다.

이 감독은, “영화란 현실이 아니면서도 현실을 일깨우고 현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어떤 것, 곧 의미있는 판타지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감독의 〈오아시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관객: 영화에서 ‘거울’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입니까?

이창동: 뭐, 특별한 생각을 갖고 한 건 아닌데… (웃음) 여러 생각이 겹쳤는데, 우선은 종두가 공주를 만나는 순간에 공주가 빛과 함께 보였으면 해서였죠. 그리고 거울을 통해서 공주에게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 주는 도구로서의 빛을 말하고 싶었어요. 빛이란 것이 현실을 초월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상징하니까요.

관객:‘OASIS’라고 적힌 카펫은 직접 제작한 것입니까?

이창동: 그 카펫은 머릿속 관념이 만들어냈어요. 오아시스는 판타지의 상징이고, 사랑이란 판타지는 사막같은 삶에서 꿈을 꾸게 하는 오아시스 같은 거죠. 그런데 요즘은 그것도 너무 낡고 흔해져서 의미를 잃고 있더군요, 싸구려 벽걸이처럼. 그래서 적당히 조잡하고 유치한, 싸구려 기성품 같은 카펫을 만들게 됐죠.

관객: 관객반응이 ‘아름다운 사랑이다’라는 것과 ‘답답하다’라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혹시 후자는 의도된 것입니까?

이창동: 네, 의도였어요. 영화는 작품구조 안에 모든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죠. 관객에게 수용되면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죠. <오아시스>의 결말이 변한 것 없어 보이겠지만 관객이 거기서 무언가 느꼈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 텍스트에 뭔가 덧붙여져, 영화 밖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낼 것이라 믿습니다.

관객: 소설을 쓰다가 영화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창동: 30대 후반이 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 길을 바꾸고 싶어서 일단 힘든 일로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자 생각했죠. 문화적 사치감을 적당히 충족시키면서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영화 조감독이었다. (웃음) 그래서 조감독을 시작했는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여러분도 어떤 것을 꿈꾼다면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승부를 걸면 꼭 이루어질 겁니다. 저처럼 말이죠.

예정시간인 5시를 훌쩍 넘긴 7시가 되어서야 행사는 끝이 났지만, 참가자들 대부분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오히려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아쉬워했다. 이 감독 역시 “나의 말은 재미도 없으면서 늘어지기만 한다”며 겸연쩍어 하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잠시도 대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 이 시대의 상처를 끄집어내어 때로는 불편하고 절망스러울 정도로 치열하게 파헤치는 이창동 감독. 그러나 가까이에서 본 그의 눈은 선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꿈을 찾는 아이처럼. 감독은 절망에서 희망을 꿈꾸고 있었고, 이 감독과 만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영화팬들에게 이 감독은 바로 그들의 ‘오아시스’였다.

글/ 티티엘 송시원 사진/ 티티엘 조병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