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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2002-11-18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오픈시네마/영국/2002년/106분 /감독 켄 로치/ 오후8시 시민회관

가족과 함께 사는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 이 절망의 끝에서, 그래도 미래가, 희망이 남아 있음을 믿어야 하는가. 켄 로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 냉철한 시선과 따뜻한 목소리. 켄 로치가 위대한 시네아스트인 것은 그래서이다.

“열여섯 생일을 축하한다.” 이른 아침 바닷가에서 생일축하 전화를 받은 리암의 얼굴이 어둡다. 꿈은 이미 산산조각 났고, 그는 경찰에 쫓기는 몸이다. 이제 겨우 열 여섯. 축복받아야 할 생일날, 그는 절망의 나락에 내몰린다. 소년 리암에겐 제대로 된 ‘가정’을 꾸려보겠다는 정말 소박한 소망 하나가 있었다. 일찌감치 학교를 때려치운 말썽쟁이지만 근본은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한 리암은 미혼모인 누나, 그리고 감옥에 있는 엄마와 함께 머물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어한다. 마약 거래든 뭐든, 자신이 할 수 있고 돈이 되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어렵사리 돈을 모은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온 엄마는 다음날 젊은 애인의 집으로 떠나 버린다. 가족과 함께 사는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 이 절망의 끝에서, 그래도 미래가, 희망이 남아 있음을 믿어야 하는가. 켄 로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 냉철한 시선과 따뜻한 목소리. 켄 로치가 위대한 시네아스트인 것은 그래서이다.

<스위트 식스틴>이라는 제목은 아이러니다. 소년의 작은 꿈은, 그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이뤄질 수 없다. 그는 하층 노동 계급의 인물이고, 범죄와 가난의 악순환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빵과 장미>를 통해 ‘세계화’의 허상을 까발리는 등 좀 더 거창한 주제로 옮아간 듯했던 켄 로치는 <스위트 식스틴>에서 개인과 가정이 놓인 자리가 자본주의라는 가치와 시스템 안의 ‘진공 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내 이름은 조>에 이어 켄 로치의 글래스고 3부작 중 2부로 만들어진 <스위트 식스틴>은 영어권 영화인데도 사투리 억양이 심해서, 올 칸 영화제 상영 당시 영어 자막을 넣은 채 상영됐다. 그렇지만 얼마 전 영국 극장 개봉 당시엔 초반 몇 분 동안만 자막을 넣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리암처럼 당신(관객)도 이제부터 혼자 견뎌야 한다”는 것. 욕설이 난무한다는 이유로 등급을 불리하게 받은 문제 등이 겹쳐, <스위트 식스틴>은 관객몰이에 실패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런 흥행 실패가 켄 로치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진 않다. 대중매체에서 사라져간 좌파의 자리를 지난 40년간 지켜온 켄 로치가 아닌가. 그는 또 다시 영국 사회 하층민들과 마주할 것이고,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다. <스위트 식스틴> 감상의 또 다른 포인트는 배우들의 연기. 특히 축구 선수 출신으로 연기 경험이 전무한 마틴 컴스턴의 연기에는 놀라울 만큼의 진정성이 녹아 있다.

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