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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에서 온 딸><신의 간섭><물의 여인><작은 불행><보쿤지-내가 사는 곳><광음적고사>
2002-11-18

<연안에서 온 딸> Daughter from Yan’an

와이드 앵글, 일본, 2001년, 120분

감독 이케야 카오루, 오후5시30분 부산3

문화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그들은 노동의 숭고함을 배우기 위해 연안행 기차에 오른다. ‘하방’이라 불리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혁명의 칼날이 자기 목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방에서 모랫바람이 불어오는 오지에서 중학생에 불과했던 그들은 혁명이 아니라 생존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연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

역사의 격랑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가? <연안에서 온 딸>은 70년대 자신도 모르는 새 문화혁명의 최전선에 섰던 10대 소년소녀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영화는 새벽을 가르는 기차 소리로 막을 연다. 기차 안의 한 여인은 생면부지의 아버지를 만나기 앞서 설레임과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도 내 생각을 했을까요?” 그녀의 이름은 하이시아, 삭막한 시골 연안에서 태어나 농부의 아내가 된 27살 여인은 베이징에 친아버지가 살고있다는 소식에 눈물 흘린다. 베이징에 사는 아버지 왕루청, 그 역시 연안에 두고 온 딸이 찾아온다는 말에 주체 못할 울음을 터뜨린다.

아버지와 딸의 눈물이 비롯된 곳은 27년 전 연안이다. 문화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혁명의 순결한 정신을 지키고자 선생님을 연단에 끌어다놓고 자아비판을 시켰던 10대들이 있다. 이름하여 홍위병. 그들은 노동의 숭고함을 배우기 위해 연안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하방’이라 불리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혁명의 칼날이 자기 목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방에서 모랫바람이 불어오는 오지에서 중학생에 불과했던 그들은 혁명이 아니라 생존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연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 태어나 처음 부모의 품을 벗어난 아이들은 배고픔과 외로움에 지쳐 있었고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사랑이었다. 이제 50대가 된 한 사내는 홍수가 났던 그해 여름을 기억한다. 위기에 처한 소녀를 구해내고 소년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건 불법이었다. 혁명은 모든 연애를 금지시켰고 당 간부는 하방된 아이들을 감시했다. 소년은 재판에 회부되고 강제수용소에서 수년간 노역을 했다. 왕루청의 딸 하이시아는 그 시절 그렇게 위험한 사랑이 남긴 유산이다.

연안은 1935년 대장정의 종착지였다. 마오저뚱이 국민당군에 쫓겨 마침내 도착한 이곳에는 아직도 중국공산당의 증인들이 살아 있다. 황폐한 마을 한 귀퉁이에서 마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들은 말의 오줌으로 갈증을 달랬던 대장정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진짜 혁명은 거기서 끝난 것인가? 영화는 아직 대장정 때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는 80대 할아버지와 50대가 된 문화혁명의 피해자와 겹쳐놓는다.

연안에서 온 딸 하이시아는 마침내 아버지를 만나고 그들의 재회를 기념해 베이징에서는 당시 하방된 동창생들이 다시 모인다. 술이 오가는 자리에선 “겨우 아문 옛 상처를 왜 다시 후벼대느냐?”는 고함소리도 들린다. 과연 왜일까? 하이시아를 베이징까지 인도했던 아저씨는 영화의 말미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그는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삶의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걸 입증하기 위해 살았다.” <연안에서 온 딸>은 역사라는 괴물에 물어뜯긴 ‘인간’의 기록이다.

남동철 기자

<신의 간섭> Divine Intervention

월드 시네마/ 프랑스·모로코·독일/ 엘리아 슐레이만/ 2002년/ 92분

슐레이만은 자크 타티식 유머 위에 강렬한 상징과 민족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겹쳐놓음으로써, 흥미롭고 감동적인 정치적 코미디를 탄생시켰다. 무엇보다 <신의 간섭>은 무엇보다 제스처의 영화이다. 간결하고 극도로 절제된 대사들을 대신하여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는 낯선 존재를 생생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솜씨 있게 안무된 제스처들이다.

굳이 줄거리만을 놓고 보자면 <신의 간섭>은 매우 단순한 영화처럼 보일지 모른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를 경계로 두 개의 도시, 예루살렘과 라말라가 마주하고 있다. 그 경계지역에서 예루살렘의 남자와 라말라의 여자가 만나 데이트를 즐긴다(?). 그 둘은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이 연인들은 달콤한 사랑의 밀어 대신 그저 시선을 교환하고 말없이 서로의 손을 살포시 어루만지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비견할 데 없이 절절한 정서와 느낌을 전달한다. 남자는 때로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방문하기도 한다. 언제인가부터 남자의 곁에서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뜬다. 하지만 <신의 간섭>은 결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엘리아 슐레이만은 자크 타티식의 시청각적 유머 위에 소박하지만 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상징들을 덧입히고 스스로의 민족적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겹쳐 놓음으로써, 보기 드물게 흥미롭고 감동적인 정치적 코미디인 <신의 간섭>을 탄생시켰다. 무엇보다 <신의 간섭>은 제스처의 영화이다. 간결하고 극도로 절제된 대사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기 짝이 없는)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는 부재하는 존재를 생생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솜씨 있게 안무된 제스처들이다. 정말 놀랍게도 이 제스처들은 두 개의 이질적인 스타일, 모더니스트적 절제와 CG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중영화의 과잉의 수사학 모두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슐레이만이 직접 연기한 남자 주인공 ES가 차안에서 먹고 남은 과일 씨앗을 창밖에 버리자 이에 곁에 있던 이스라엘군 탱크가 폭발해버리는가 하면, 총을 든 감시병들을 지나쳐 여자가 유유히 검문소를 통과해 가는 것만으로도 검문초소는 절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무엇보다 ES가 불어서 날린, 아라파트가 그려진 붉은 풍선이 경계를 넘어 도시의 상공을 유유히 떠돌며 지상에 작달막한 그림자를 드리우다 마침내 이슬람 사원의 꼭대기에 머무는 것을 보여줄 때와 같은 순간, 우리는 <신의 간섭>이 왜 그 노골적인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결코 노골적인 영화로 보이지 않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신의 간섭>은 무거운 소재일수록 가볍게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영화다. 슐레이만은 마치 딴전을 피우듯 여러 많은 인물들의 제스처를 통해 서사적 중심을 분산시키지만, 증오를 넘어선 명랑함 속에 일관되게 깊은 슬픔을 감추어 둔다. 그리하여 <신의 간섭>은 ‘사랑과 고통의 연대기’라는 그 부제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영화가 되는 것이다.

<물의 여인>

새로운 물결, 일본, 2002년, 115분

감독 스기모리 히데노리, 오후 1시 30분 대영시네마 3관

목욕탕집 딸에게 중요한 일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 사람들은 그녀를 ‘물의 여인’이라 부른다. “불만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야.” 그녀의 집에 숨어든 이는 ‘불의 남자’. 불과 물이 만나 온도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영화는 CF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속에 물과 불의 결합이라는 신화적 모티브를 품고 있다

비가온다. 매번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 생길때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 누군가 ‘비가오네’라고 말하면 ‘미안해요’라고 답하는 그녀의 이름은 시미료 료. 그러나 ‘시원하고 맑은 물’이란 이름 대신 사람들은 그녀를 ‘물의 여인’이라 부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날, 약혼자와 아버지를 동시에 잃게 된 료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목욕탕 벽화에서만 보았던 후지산으로 무작정 향한다. 후지산의 정기와 길에서 만난 이름모를 여자로부터 원기를 얻은 료는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자신의 집에 숨어든 ‘불의 남자’를 발견한다. “불만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안정이 되는 느낌이야” 그리고 료는 그에게 가장 적당한 일을 선사한다. 욕탕의 물은 어떻게 끓는가!.

불과 물이 만났지만 그 온도는 점점 높아져만 가는 영화 <물의 여인>은 CF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속에 물과 불의 결합이라는 신화적 모티브를 품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목욕탕은 “승려도,야쿠자도, 할아버지도, 아기도 여기선 몸을 씻어야하는 몸뚱아리일뿐…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지만, 법은 상식을 가르치지만, 목욕탕은 인생을 가르친다네”같은 영화 속 노래와 같이 가식없이 조화로운 융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텅스텐 빛깔의 푸른 화면과 오로지 빗소리만이 가득한 가운데 사람의 손길과 물이 휘감기듯 펼쳐지는 정사씬은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와세다대학 출신인 스기모리 히데노리감독은 피아영화제에출품한 1981년 단편 <그레이>이후 NHK PD, TV광고제작등 다양한 작업을 거쳤고 <물의 여인>은 그의 장편데뷔작이다. 일본의 아이돌스타 우아(UA)가 ‘물의 여인’으로, <피크닉> <이치 더 킬러>등의 아사노 타다노부가 ‘불의 남자’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백은하 기자

<작은 불행> Minor Mishaps

월드 시네마, 덴마크, 2002년, 105분

감독 아네트 올슨, 오후8시 부산2

감독 스스로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도그마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는 듯 보인다. 조명도 없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디지털 카메라는 클로즈업과 롱숏을 번갈아 찍어댄다. 이에 가족 사이에서 치솟는 불길과 한없는 평화, 음험한 비밀이 실감나게 영상 안에 들어온다.

<작은 불행>은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 차갑게 증오하다가도 서로 어깨를 맞잡고 눈물을 흘리곤 하는 묘한 관계란 사실을 매우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덴마크의 한 가정은 슬픔에 빠진다.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남편과 두 딸, 아들, 남편의 동생의 삶은 각각 바뀌기 시작한다. 이후 서로가 숨기고 있던 비밀과 진실이 드러나면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던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받지만, 이는 결국 이들을 매어놓은 인연의 끈이 질기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어찌보면 신파 같은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인물들에 대한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 덕분에 보다 폭넓은 차원의 의미를 획득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사실적인 느낌의 표현에 있다. 각각의 캐릭터는 마치 현실 속의 인물처럼 생동감 넘치며, 이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흐름 또한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네트 올슨 감독이 추구한 ‘메소드 연기’라는 방법론이 존재한다. 배우를 미리 선정해 이들로부터 캐릭터를 뽑아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탓에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했던 것. 감독 스스로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도그마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는 듯 보인다. 라스 폰 트리에의 젠트로파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들어졌다는 점 뿐 아니라, 조명이 없는 상황에서 디지털 카메라는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클로즈업과 롱숏을 번갈아 찍어내고 있다. 이에 따라 감정은 증폭되거나 절제되며, 가족 사이에서 치솟는 불길과 한없는 평화, 음험한 비밀과 신성한 소통들이 실감나게 영상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 때문에 <작은 불행>을 보고 있노라면, 덴마크에 사는 한 가족의 얼굴 위에 자기 가족의 초상이 겹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문석 기자

<보쿤치 - 내가 사는곳> Bokunchi - My House

아시아 영화의 창/ 일본 / 2002년/ 116분/ 감독 사카모토 준지/

오후 5시 메가박스6관

굵직굵직한 남자영화를 선보였던 사카모토 준지의 최신작 <보쿤지 - 내가 사는곳>은 의외로 향수 가득한 따뜻하고 차분한 영화다. 마흔중반에 들어선 감독은 야쿠자들의 비정한 세계와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이름도 지역도 불확실한 공간에 강한 아이들과 어리석은 어른들이 사는 새로운 섬을 만들어 놓았다.

“고향이 원래 그런거야. 도시에서 망가진 이들이 돌아오는곳…” 외딴섬에 살고 있는 어린 이타와 니타형제는 6개월 전에 슈퍼 간다며 나간 뒤에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고아신세. 하지만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양아치 안도, 정체불명의 고양이 할머니, 고물장수 할아버지, 조숙한 소녀 사오리, 아코디언 아저씨, 맛없는 중국집가족 등 “별나도 이렇게 별날 수는 없는” 섬마을 사람들을 친구 삼아, 부모 삼아 꿋꿋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장성한 누나 가노코와 함께 나타나고 다음날 또 어딘가로 홀연히 떠나가고 만다. 카노코가 이타와 니타를 엄마처럼 거두는 가운데 잠시 따뜻한 한때를 보내던 ‘이 빠진’ 가족에겐 그러나, 서서히 이별의 날이 다가온다.

<신 의리없는 전쟁> 등 굵직굵직한 남자영화를 선보였던 사카모토 준지의 최신작 <보쿤지 - 내가 사는곳>은 의외로 향수 가득한 따뜻하고 차분한 영화다. 마흔중반에 들어선 감독은 야쿠자들의 비정한 세계와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이름도 지역도 불확실한 공간에 강한 아이들과 어리석은 어른들이 사는 새로운 섬을 만들어 놓았다. 사카모토 리에코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져 시종일관 경쾌한 호흡을 유지하며 불운한 상황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형제에게 마냥 어리광을 받아주는 할머니의 품을 벌리진 않는다. 섯부른 장미빛 미래도 대책없는 낙관도 없다. 대신 음험한 세상을 향해 떠나라고, 어른이 되라고, 홀로 서라고, 강인한 아버지의 손이 되어 등을 떠미는 것이다. 하지만 니타가 비오는 바닷가를 터벅터벅 걸을 때, 꿈처럼 나타나 우산을 받혀주는 가면 쓴 남자들의 행렬은 형제를 향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백은하 기자

<광음적 고사> 光陰的故事

대만영화 특별전 대만 1982년 106분 오후2시 부산극장 3관

감독 에드워드 양, 커이쳉, 타오더쳉, 장이

개인의 성장과 외적 제약이라는 모티프가 모든 에피소드에서 드러난다. 친구를 사귀고자 하나 끝내 실패하고 마는 한 외톨이 소년의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인 첫 에피소드나 한 여성의 사랑을 쟁취하고자 온갖 고생을 마다지 않는 한 남자 대학생의 분투기를 담은 세번째 에피소드 또한 개인의 성장과 외적 제약에 시선을 맞춘다.

대만 뉴웨이브의 탄생을 알린 작품. 4개의 에피소드를 엮어놓은 옴니버스 영화다. 훗날 가장 시선을 모으게 된 작품은 아무래도 에드워드 양이 만든 에피소드 <갈망>. 두번째 에피소드로, 60년대를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은 샤오펜이라는 여중생이다. 샤오펜은 홀어머니, 재수생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느날 한 남자 대학생이 그녀의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샤오펜은 멋진 외모와 좋은 매너의 대학생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에 대한 소녀적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다. 샤오펜이 몰랐던 점이 있다면, 이미 그 대학생이 자유분방한 성격의 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기 시작해 월경을 시작하면서 이성과 세상에 서서히 눈뜨기 시작하는 소녀 샤오핀을 다룬 성장영화라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첫 월경을 한 샤오펜이 시트 아래의 핏자국을 조용히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 부분. 샤오펜의 학교 동료인 샤오화의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다. 유난히 작은 키의 남학생인 샤오화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위해서 자전거를 배웠는데, 이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뇌까린다.

개인의 성장과 외적 제약이라는 모티프는 다른 3개의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난다. 친구를 사귀고자 하나 끝내 실패하고 마는 한 외톨이 소년의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인 첫 에피소드나 한 여성의 사랑을 쟁취하고자 온갖 고생을 마다지 않는 한 남자 대학생의 분투기를 담은 세번째 에피소드 또한 개인의 성장과 외적 제약에 시선을 맞춘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다.

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