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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라인> Border Line - 김인식 <로드무비> 감독
2002-11-19

보더라인 Border Line

일본, 2002년, 118분

감독 이상일, 오후1시30분 대영3

 

느슨하고 섬뜩한 로드무비

 

밴쿠버 영화제에서 (전날의 숙취와 시차로 인해) 반수면 상태로 봤던 영화 <보더라인>. 그래서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뱃속에 소화 덜 된 음식처럼, 내 머리 속에 상당히 헷갈린 상태로 뱅뱅 맴돌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부분에 초청되어 다시 날 찾아왔다. 완전히 소화시켜달라는 듯이. 하지만 뭐… 난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너무 바쁘니까, 부산에서 봐야 할 영화가 넘치니까, 게다가 술도 마시고 재미있게 놀기까지 해야 하니까. 그렇치만 굳이 <보더라인>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한다면, 템포가 아주 느린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덜떨어진 한 고삐리의 성장여행? 아무튼, 정확하진 않지만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구로사키 다이고는 상습 음주 택시 운전사! 그는 오늘도 캔맥주를 택시 안에 구겨버리며 운전을 하다, 재수없게 자전거를 타고 비실거리는 고삐리 마츠다 슈지를 들이받는다. 마츠다는 황당하게도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 중이란다. 어설픈 자해공갈단 수준의 고삐리의 협박에 못 이겨 홋카이도를 향해 택시를 모는 구로사키 다이코. 홋카이도에는 어릴 때 마츠다를 버린 어머니가 살고 있다. 이때부터 영화는 슬슬 로드무비 형식을 띤다. 어설픈 칼 한 자루를 쥐고 택시기사를 협박해가며 홋카이도로 향하는 두 사람의 여정이 귀엽고 재밌기까지 하다.

두번째 부분으로 접어들면서 영화에는 갑자기 조폭들이 등장한다. 이제는 중년의 골칫거리 깡패에 불과한 미야지 다이스케와 그의 부하 기타지마는 일당의 돈을 횡령한 회계사 이소무라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소무라가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횡령했다는 것을 알게 된 미야지는 일당을 쏴가며 그를 놓아준다. 영화는 이제 조폭인 미야지와 고삐리 마츠다의 우정에 포커스를 맞춘다. 미야지는 조폭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고 마츠다는 미야지가 딸에게 주려했던 연(바람에 날리는)을 가지고 다시 여행을 하면서 영화는 세번째 챕터로 넘어간다.

집을 나가 원조교제를 하며 살아가는 미야지의 딸 하루카와 아버지 살해범 마츠다와의 만남. 마츠다는 연을 하루카에게 전해주고, 아버지의 죽음을 알린다. 하루카와 원조교제를 하는 유부남을 모텔방 앞에서 온몸으로 저지하는 마츠다. 무수히 유부남에게 뺨을 얻어맞으면서도 문 앞을 꿋꿋히 지키는 마츠다. 이 장면이 보더라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씬이 아니었나 싶다.

<보더라인>은 대단히 극단적인 상황의 인물들이 느슨하게 얽히면서 전개가 된다. 영화를 감상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측면도 있다. 느린 이야기 전개, 복잡하진 않지만 퍼즐처럼 얽히는 인물과 상황들. 하지만 그 더딘 흐름 속에서 의외로 사람의 감정을 터칭하는 힘이 있었다. 졸음과 악전고투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머리 속엔 왜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보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일까? 그런데 또하나의 걱정,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이 말 들으면 정말 화내겠다…. 후후.

김인식/ 영화감독·<로드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