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e-윈도우
당신은 행동의 결과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비쥬얼드>
2002-11-25

컴퓨터게임

300년 전 유럽 사람들은 이성의 빛 아래 밝혀지지 않을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30년 전 한국 사람들은 하면 된다고, 노력하면 그만큼 대가가 따른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린아이라도 안다. 아무리 고민해 내린 선택이라도 결과가 항상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뭘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다가 멍하니 있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손놓고 있는 것에는 무작정 뭐든 하고 보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다.

<비쥬얼드>(Bejeweled)는 퍼즐 게임이다. 처음 PDA로 나왔을 때 이 게임 때문에 회사 업무가 마비되고 일찍 퇴근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 뒤 윈도 버전, 웹 버전 등이 나왔고, <비쥬얼드>의 게임 로직을 그대로 사용한 클론 게임도 한두개가 아니다. 퍼즐 전문회사인 ‘팝캡’이 만든 게임답게 시스템은 단순하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다. 시작하면 정사각형 안에 여러 종류의 보석이 가득 차 있다. 상하나 좌우로 붙어 있는 두개의 보석을 선택해 서로 위치를 바꿀 수 있다. 같은 게 세개 이상 있게 되면 보석은 사라진다. 게임 모드는 두 가지다. 타임 모드는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것이고 스테이지 클리어 모드가 특이하다. 보석을 없애서 생기는 빈 공간으로 윗줄의 보석이 차례로 내려온다. 그리고 맨 위에 다시 보석이 채워진다. 블록이 계속 쌓이다가 꼭대기에 닿으면 게임이 끝나버리는 <테트리스>류와는 다르다. 더이상 교체가 불가능할 때, 보석을 세개 이상 이어놓을 수 없을 때 게임이 끝난다.

반짝이는 보석들이 가득 쌓여 있다. 눈이 빠지게 화면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움직여야 세개 이상 연속이 될지 뒤진다. 찾는 족족 바꿔놓으면 안 된다. 어떤 것부터 바꿀지 머리 터지게 생각한다. 간신히 보석을 없애면 새로운 게 나온다. 원래 있던 보석도 밑으로 쏟아져 내렸으니 배치가 완전히 달라졌다. 다시 열심히 들여다본다. 생각한다. 가장 통쾌한 순간은 ‘연쇄’다. 몇개가 없어지면서 쏟아져 내린 보석들이 마침 다시 다른 보석들과 나란히 놓이면서 공교롭게도 연쇄적으로 보석들이 사라진다. 화면에 ‘엑설런트!’라는 감탄사가 뜰 때의 기분이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멋지게 성공하는 것도 성취감이 있지만 우연히 맞아떨어져 연쇄가 일어날 때에 더 흐뭇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뿌듯한 것도 잠깐, 뭔가 잘못되었다. 아까 찍어두었던 보석들이 연쇄과정에서 모두 사라졌다. 대신 새로 나온 것들 중에는 바꿀 만한 게 없다. 겨우 하나 찾아 바꿨다. 다시 새로 나온 건 여전히 필요없는 것이다. ‘더이상 움직일 것 없음.’ 게임오버다.

어떤 걸 어떻게 움직일까 충분히 고민했고, 최선이라고 믿는 걸 선택했다. 결과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화면 가득 훌륭하다고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불과 1분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최선이라고 믿었던 선택은 사실은 파멸로의 지름길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자기 최면을 걸 여유도 없다. 왜 그랬을까, 왜 다른 걸 선택하지 않았을까, 이럴 거면 왜 엑설런트라며 입에 발린 소리는 한 걸까, 좌절 속에서 자기 혐오와 원망이 엇갈린다. 그래서인지 또 달려든다. 이번에야말로 최선의 선택만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번에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애써 지워버린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