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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혹은 음산하게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2002-11-25

‘하이브리드 축제’ 표방하는 제3회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11월29일부터 연세대에서영화와 음악과 디자인, 그리고 예술의 모호한 점이지대, 개념의 틀을 성큼 넘어선 영상의 파티를 즐겨볼까. “다양한 문화적 장르와 요소를 함께 아우르는 하이브리드(hybrid: 혼성) 축제”를 표방하는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 2002’(이하 레스페스트)가 11월29일부터 12월5일까지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올해로 3회를 맞이한 서울의 레스페스트는 세계 각국 디지털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영상실험을 소개하는 영화제. 1995년 샌프란시스코의 아트갤러리에서 조촐하게 출발한 행사로 98년부터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영화제로 확대됐고, 2000년부터 한국에서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의 개막작은 비욕 등 유명 뮤지션들의 실험적인 뮤직비디오로 잘 알려진 크리스 커닝햄의 뮤직비디오 특별전. “순수하게 사운드에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내 상상력을 활성화한다”는 커닝햄의 뮤직비디오는 음울한 판타지와 블랙 유머를 품은 영상과 음악의 결합이다. 폐허 같은 아파트 앞 공터, 자유자재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니터 안의 ‘악마 같은’ 존재와 괴물 같은 얼굴의 아이들이 난장을 벌이는 에이펙스 트윈의 <Come to Daddy>는 그의 뮤직비디오 출세작.

좁고 어두운 공간, 일렁이는 머리칼부터 신발끈까지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인물의 이미지와 음산하면서도 몽환적인 포티스헤드의 트립합이 근사하게 어울린 <Only You>, 청회색조의 황량한 들판에서 까만머리, 까만옷과 숄 차림으로 마녀의 의식처럼 주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돈나의 <프로즌>, 실제 로봇과 CG, 비욕의 연기를 합성한 로봇들의 인간적인 사랑을 담아낸 <올 이즈 풀 오브 러브> (사진) 등 클라이브 바커와 스탠리 큐브릭을 비롯해 10여년간 영화현장을 거쳐온 커닝햄 특유의 기이한 몽상세계를 엿볼 수 있다. 크게 글로벌 섹션과 국내 섹션, 특별초청 섹션으로 나뉘는 상영작은 모두 150편 이상. 글로벌 섹션은 소주제를 단 7개의 단편영화 섹션과 2개의 뮤직비디오 섹션으로 구성된다. 투명막에 쌓인 채 옆으로 움직이는 게인간들이 서로의 막을 깨뜨리며 싸우는 과정을 코믹하게 묘사한 전쟁에 대한 우화 <크랩워>, <웨이킹 라이프>처럼 로토스코핑 기법을 이용해 마당의 자연풍경과 소리를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야드> 등 12편.교통체증에 묶인 채 전화로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인 <어느 겨울날> 등 9편이 각각 ‘영화 같은 인생’과 ‘운수 없는 날’이란 주제 아래 일상의 틈새에서 다양한 풍경을 끌어내 보인다.

‘디자인 세계’는 실사 영상을 군데군데 들어내고 이질적인 요소를 콜라주한 기법으로 현대 직장인들의 소외된 심리를 드러낸 <프리스타일 디스코> 등 시각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에로틱 무비’는 포르노그라피처럼 찍었지만 여성의 육체를 에나멜로 지워버림으로써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에 반격을 가하는 <지워진 육체>(사진) 등 성적 소재를 다루되 전형성을 벗어난 영화들을 모았다. ‘감독 클럽’에서는 REM 등 뮤직비디오와 <존 말코비치 되기>로 주목받은 감독 스파이크 존즈, 힙합 그룹 ‘파사이드’의 전 멤버 팻립이 의기투합해 래퍼의 삶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들추는 가짜 다큐멘터리 <왓츠 업, 팻츠립> 등 2편이 소개된다. 그 밖에 맨해튼의 바에서 10년 이상 찍어온 고객 사진들을 재구성한 뉴욕의 초상화 <터미널 바>와 그래피티를 지우는 덧칠 작업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낳았다는 익살스런 풍자를 들려주는 <反그래피티 캠페인> 등 ‘미니 다큐멘터리’, 다양한 풍경과 기법을 동원한 길 위의 영화들을 모은 ‘로드무비’도 마련돼 있다. 왕가위의 화사한 색채가 돋보이는 DJ 섀도의 <식스 데이즈>, 흑백 일러스트 느낌이 나는 더 하이브즈의 <메인 오펜더> 등 이미지 실험과 음악이 어우러진 ‘시네마 일렉트로니카’와 ‘락 뮤직 비디오’의 상영작들도 놓치기 아까운 부문. 극/실험 단편 2개 부문과 단편애니메이션, 모션그래픽/뮤직비디오로 나뉘는 국내 섹션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의 의식을 현란한 색감으로 드러낸 <앨리스>, 크라프트 베르크의 전자 리듬에 맞춰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는 세 인물을 만화적인 실사영상으로 담은 <데르 텔레폰 안루프: 크라프트 베르크> 등 국내 디지털 화제작을 망라하고 있다. 거리 부랑자와 주민 등을 대상으로 연기 워크숍을 꾸려온 텐더로인 액션그룹의 지원과 함께, 택시 기사들의 일상을 담은 <시그널7> 등 비전문배우와 직업배우가 조화를 이룬 사실주의적인 디지털장편영화를 제작해온 롭 닐슨의 회고전, ‘프랑스 단편 모음: 클레르몽 페랑 초청작’, 세계 TV광고 우수작을 모은 ‘Shots 2002 베스트 컬렉션’, 켄 이시이의 뮤직비디오를 포함해 레스페스트 일본의 공모작을 묶은 ‘도쿄 레스 믹스’ 등 초청 섹션의 프로그램도 푸짐하다. 폐막작은 “입을 사용해 일반적으로 기계에 의해 생성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비트박스 음악의 유래와 스타들에 대한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브레스 콘트롤>. 더그 E. 프레시, 팻 보이즈 등 어떤 악기 못지않게 화려한 비트와 소리를 지어내는 뮤지션들의 생생한 실연까지, 자기 표현에 경계를 두지 않는 상상력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황혜림 blauex@hani.co.kr▶ 레스페스트 영화제 상영시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