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부산영화제, 권위냐! 활력이냐! 갈림길에 서다
2002-11-26

부산영화제 전용관 언제? 어디에?

올해로 일곱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23일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장·단편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모두 57개국에서 온 226편의 필름을 연인원 16만7349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국내 게스트와 기자를 포함해 35개국에서 5318명의 게스트들이 참가했으며, 감독·출연진이 영화 상영 뒤 관객과 영화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관객과의 대화’는 모두 112차례나 열렸다. 베트남 영화 <미타오>가 정치적인 이유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상영 금지 요청을 받아 취소된 것과 영사사고로 한 편(<몬락 트랜지스터>)의 영화가 상영 중단된 일 이외에는 큰 차질 없이 축제가 끝났다.

이런 통계의 나열 이외에 이번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화적인 성과라면 ‘뉴커런츠상’을 인도의 카날라 사스트리 감독과 나눠 가진 박찬옥 감독의 발견일 것이다. 수상작인 <질투는 나의 힘>은 그의 데뷔작이지만, 이 영화에 담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인물에 대한 통찰, 절제된 연출력 따위에서 예사로운 신인이 아님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화제라는 건 이미 몇 해 전부터 나온 평가다. 칸·베를린·베니스·프리부르·산세바스찬·시드니·시애틀·샌프란시스코·토론토 등 유수한 영화제에서 수장 또는 관계자들이 부산으로 몰려온 것을 보면 높아진 부산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 뉴커런츠상을 공동으로 받은 인도의 <의례…열정>.

부산의 역동성은 부산영화제 기간동안 열리는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에서 잘 드러난다. 피피피는 아시아의 유망 감독들을 제작·투자자와 연결지어주는 마당이다. 피피피 운영위원회는 해마다 아시아 각국 감독들의 새 프로젝트를 200편 정도 접수해 이 가운데 20편 정도를 공식 프로젝트로 선정한다. 피피피 기간 동안에는 이 작품들을 두고 감독·제작자·투자자 사이에 활발한 만남이 이뤄진다. 올해 피피피 프로젝트에는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웨인 펑 등 세 감독과 함께 만드는 옴니버스 <내 생애 최고의 날들> 등 21편이 선정됐다. 이 가운데는 아프가니스탄 세디그 바르마크 감독의 <무지개>도 포함돼 있는데, 이 영화는 아프간에서 20년만에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탈레반 정권 치하 여성들의 이중적 억압을 다룰 예정인 이 프로젝트는 투자자들의 관심도 적지 않았다. 피피피가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영화의 생산을 가능케하는 창구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7회를 마무리한 지금 좀더 권위 있는 영화제로 거듭날 필요도 있고, 내실과 짜임새를 더해나갈 필요도 절실하다. 동시에, 남포동 뒷골목 포장마차의 밤샘 토론이 대변하는 초기의 활력도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 이와 관련해, 올해 개·폐막식 때 초청 참석자들에게 정장을 요구한 일을 두고 영화제가 초기의 분방한 활력을 배신하고 관료화해가는 조짐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영화제 전용관 부지로 해운대쪽을 검토하는 일을 두고 비슷한 우려를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이런 우려가 나온다는 건, 지금 부산이 초반의 활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떻게 영화제의 내실과 권위를 높여나갈 것인가 하는, ‘두 토끼’처럼 보이는 문제와 부닥쳤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