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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현지보고] 미리보는 <보물성> [2]
2002-12-02

존 실버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애니메이터 글렌 킨은 “나는 아직도 연필을 가지고 다닌다”면서 한참 젊은 후배인 짐의 캐릭터디자이너 존 리파와 함께 종이에 그림을 그려 보였다. 애정담긴 펀치를 신속하게 주고받는 듯, 연필 하나만으로 존과 실버를 번갈아 그린 두 사람은 우주항해시대의 이 캐릭터들이 삶과 추억 속에서 살아나왔다고 설명했다.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가린 채 어두운 코트 안으로 움츠러든 반항아 짐은 눈썹을 찌푸린 제임스 딘에서 원형을 따왔다. 잔인한 해적이면서 자상한 아버지 역할도 하는 실버는 글렌 킨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풋볼 코치의 이미지에 많이 기대고 있다. 글렌 킨은 “실버가 주름이 많고 우락부락한 것은 삶의 흔적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미래에 속하는 실버의 사이보그 디자인마저 골동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편리한 주방도구이자 무기 노릇을 하는 실버의 왼팔은 킨이 어린 시절 집에서 봤던 옛날 난로 모양 램프에서, 왼쪽 귀에 달린 톱니바퀴는 애니메이터 친구의 집 뒷마당에 있는 기관차 부품에서 각각 디자인을 응용했다.<보물성>은 물론 SF영화의 흔적도 남아 있는 영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성실하게 떠들어대는 벤은 <스타워즈>의 C3PO나 자자 빙크스를 닮았다. 서로 다른 차원을 관통하는 신비한 입구와 쏟아지는 유성 사이를 항해하는 우주함선, 그 자체로 거대한 기계라고 할 수 있는 행성 등을 보면 어렵지 않게 몇몇 SF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런 영화들의 은색 광택과는 달리 사이보그 해적 존 실버는 어딘지 고철 같은 느낌을 준다. 3D의 우주공간을 항해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2D 캐릭터들. 그 두 가지가 서로 푹신하게 안아주는 듯 엉기는 것은 모험담 본연의 자세를 잊지 않은 애니메이터들의 섬세한 손길 덕분일 것이다.새로운 차원의 5D라 불러달라 머스커와 클레멘츠는 <보물성>을 17년 동안 미뤄왔다. 그 당시 물망에 올랐던 아이템 <인어공주>가 더 반응이 좋았던 탓도 있지만, 그들이 꿈꾸는 대로 <보물성>을 완성하기엔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연이 있는 만큼 <보물성>은 디즈니가 쌓아온 기술적인 노하우를 소년다운 감수성에 쏟아부은 애니메이션이 됐다. <다이너소어> <토이 스토리> 같은 3D애니메이션을 볼 때와는 달리 한 장면 한 장면 탄성을 자아내지는 않지만, <보물성>은 평범해 보이는 하나의 컷도 비범한 기술을 동원해야 했던 작품이다.오일 페인팅이 바로 그런 기법이다. 오일 페인팅은 유화의 부드러운 느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동화에 적당하지만, 원화를 말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물성> 제작진은 <밤비> 이후 쓰이지 않았던 그 기법을 다시 도입했다. 그들은 소설 <보물섬>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던 N. C. 와이쓰의 그림 같은 느낌이 날 때까지 컴퓨터그래픽을 실험했고, 마침내 두 가지를 구분하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했다.

고생한 티가 안 나는 오일 페인팅 기법과 달리, 딥 캔버스는 처음 그 기법이 도입된 <타잔>보다도 역동적인 느낌이 물씬하게 배어나오는 효과를 가져왔다. 딥 캔버스는 일렉트릭 라이팅과 가상현실세트 등을 동원해 실제 인물의 움직임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밀착해 담아낸 듯한 착각을 주는 기법. 컴퓨터 시스템 안에 동작의 배경이 되는 세트를 입체적으로 건설한 뒤 실제 조명을 치는 것처럼 변화를 주면, 현실 공간에서 카메라를 움직이며 다양한 각도로 촬영하는 듯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짐이 태양열 보드를 타고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벌이며 자유자재로 질주하는 장면이 딥 캔버스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버려진 구조물 사이를 위아래로 타넘는 짐은 X윙을 탄 루크 스카이워커가 죽음의 행성 한가운데로 돌진하는 <스타워즈>의 한 장면처럼 경이로운 시각효과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것은 2D도 3D도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5D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것 같다”는 제작진의 장담도 이 부분에서 설득력있게 빛을 발한다.<보물성>은 현실과 가까워지기 위해 경쟁하는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독특한 생존방식을 택한 애니메이션이다. 그것이 누구보다 막강한 기술과 자본을 가진 디즈니의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 빠져드는 아이들이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하고 싶어하지는 않으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선택이기도 하다. 취재진이 모인 자리에서 디즈니 사장 토머스 슈마허는 “이 스튜디오 곳곳에는 미키 마우스 그림이 숨어 있다. 바로 이곳 천장에도 미키 마우스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선명한 선으로 수십년을 지배한 미키마우스. <보물성>은 그 초심을 잊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관된 방향을 고집하는 애니메이션이다.LA=김현정 parady@hani.co.kr▶ [LA현지보고] 미리보는 <보물성> [1]▶ <보물성> 감독 존 머스커와 론 클레멘츠▶ <보물성> 프로듀서 로이 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