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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 크리미널(Ordinary Decent Criminal)
2001-04-19

죽음의 운명도 훔쳐버려라!

1999년, 감독 타데우스 O. 설리번 출연 케빈 스페이시 장르 액션(컬럼비아)

아일랜드와 영국과의 지난한 싸움으로 상처투성이가 돼버린 도시, 더블린. 그 혼란한 도시 속을 검은 가죽재킷에 스키 복면을 한 사나이가 오토바이로 질주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린치(케빈 스페이시). 온갖 종류의 절도사건으로 법원과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받고 있지만 항상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감으로써 권력을 우롱하고 있다. 게다가 매스컴까지 동원한 거침없는 그의 행동은 정치권력에 넌더리를 내는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은근한 지지까지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 아일랜드 대도의 행적이 낯설지 않다. 그러고보니 마이클 린치라는 대도는 아일랜드의 실존했던 인물 마틴 카힐을 재현한 인물이다. 우리에겐 이미 98년 영국감독 존 부어맨의 <제너럴>이라는 작품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더블린 출신의 신예감독 타데우스 O. 설리번은 존 부어맨에 이어 다시금 마틴 카힐의 일대기를 영화로 끌어들였다. 극중 인물의 이름을 마이클 린치로 바꾸긴 했지만, 그의 행적은 존 부어맨이 이미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일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생 동안 8천억원어치의 금품을 털어냈던 이 대도는 아내와 처제를 동시에 사랑하며, 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명화를 백주에 훔쳐내는가 하면, 황당하다못해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방식으로 갑부들의 은행을 털어 달아난다. 그러면서도 정부로부터 실업자 연금은 꼬박꼬박 타내고, 가끔씩은 사리사욕과 관계없는 ‘의로운’ 범죄로 국민들의 사랑도 받는다. 그런데 이 영화 <디센트 크리미널>에서의 마틴 카힐의 모습은 존 부어맨이 그려냈던 인물과는 크게 다르다. 존 부어맨은 그를 아일랜드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체현하는, 사회적이면서도 개성강한 캐릭터로 그려낸 반면 <디센트 크리미널>에서의 그의 모습은 어딘지 여느 할리우드영화에서 흔히 봄직한 엉뚱하고 황당한 도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결말부. 존 부어맨은 마틴 카힐이 IRA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적 운명을 영화 내내 끌고가는 반면, 타데우스 O. 설리번은 주인공이 신출귀몰하게 죽음의 운명을 피해 도주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묘한 매력으로 기억되는 마틴 카힐을 영국 출신 감독 존 부어맨이 그려낸 데 대한 반감이었을까? 더블린 출신의 타데우스 O. 설리번은 98년 칸영화제 감독상까지 수상했던 <제너럴>에 진검승부를 하겠다고 나섰으나, 역시나 그 영화적 연출력은 이미 거장이 된 존 부어맨을 따라잡기엔 한참 부족한 듯 보인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