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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권영길 인터뷰 <1>
2002-12-13

˝노동자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생활을 누려야 경제성장도 가능합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마지막으로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 기획을 마칩니다. <씨네21>은 379호부터서 노무현 후보, 정몽준 후보(기사 작성 시한이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가 실시되기 이전이었습니다), 이회창 후보의 순으로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번 특별기획은 12월19일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각 정당의 영화영상 관련 정책을 점검하는 것과 동시에 후보들의 문화적인 소양과 문화관을 들여다보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편집자

후보 등록을 코앞에 둔 11월23일.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권영길 후보를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권 후보가 힘주어 강조한 것은 문화의 공공성. 권 후보는 한 나라의 문화정책은 특정계층만이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며 프랑스의 문화정책을 여러 번 예로 들었다. 30분 안팎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권 후보는 이 밖에도 문화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서 스크린쿼터의 현행 유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제반 법률의 개정 등을 제시했다.

5년 전 인터뷰에서 영화 <>을 길게 언급하셨습니다. 요즘 보신 영화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나요.

→ 너무 바빠서 많이 못 보거든요. 의무라고 표현하긴 좀 그렇지만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는 켄 로치의 <빵과 장미>예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린 영화인데 현재 한국사회의 국면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1300만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이지요. 그 영화를 극장에서 빨리 내린 것 같아서 아쉬워요. 장애이동권연대 투쟁을 그린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고 싶다>도 있네요. 대중적으로 공개는 안 됐는데 초청돼서 봤어요. 민중의 삶에 관하여 솔직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영화를 지지하고, 또 그게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희망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성장기에는 주로 어떤 영화를 보셨습니까.

→ 그때 우리는 무성영화를 봤으니까. 아마 제일 처음 본 게 제 기억으로 나운규의 <아리랑>일 겁니다. 요즘은 단체 관람이라는 것이 없거든요. 우리 땐 단체 관람이 많이 있었어요. 최소한 한달에 한번 이상은 학생 전체가 가서 영화를 관람했는데 변사가 계속 읊는 무성영화가 대부분이었어요.

외화도 많이 보셨겠네요.

→ 서부영화 같은 거 많이 봤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그 의미를 몰랐어요. 재밌으면 단체로 박수치고 그러느라 정신없었으니까. 인디언은 항상 나쁜 사람이고 백인은 항상 선이고. 그런 선과 악의 대결에서 어떻게든 백인이 선의 표상처럼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백인 우월사상에 대한 교육을 끊임없이 받았던 세대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가 있습니까.

→ 문소리 같은 배우를 좋아합니다만 오늘은 전체적으로 배우의 역할에 대한 제 이야길 하고 싶어요. 이런 말 하면 표 깎이겠지만. (웃음) 한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에게 전체적으로 불만이 있어요. 정말로 살아 있는 연기를 하려면 삶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그걸 갖고 있지 못하니까. 평소에도 사회적인 흐름에 대해서 자기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이야 우리도 미국에서 대선 때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것처럼은 됐지만 후원회 하면 가는 정도론 아직 멀었어요. 정치적 의사를 갖는다는 것은 단지 (대선 국면에서) 누구를 돕느냐는 문제는 아니에요.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이브 몽탕처럼 평소에 자신의 소신과 견해를 밝힐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성적인 배우들이 주목을 받는 시대가 반갑긴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은 그런 거예요.

진보정당을 표방하고 계십니다. 민노당의 문화정책은 보수라 규정한 여타 정당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요.

→ 다들 국가에서 문화분야를 지원하고 이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과감히 바꿔야 합니다. 이름있는 연주가, 음악가들 데려와서 연주회 뭐 하는 이벤트성으로 생각해서는 안 돼요. 예를 들어 거액을 주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이런 사람들 데리고 온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무엇보다 사람들 생활이 여유로워지려면 노동시간도 단축돼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문화가 상류층을 위한 장치 정도로밖에 기능을 못하는 거예요. 81년 프랑스에선 사회당의 미테랑 정권이 들어섰는데 그때 문화장관을 자크 랑이라는 사람이 했어요. 그는 영화의 날을 만들어 전국에서 상영회를 열고 거리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하더니 가장 인기있는 정치가가 됐어요. 문화가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죠.

80년대 프랑스에서 특파원 생활을 오래 하셨는데요. 당시의 경험이 지금의 문화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네마테크였어요. 거기서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봤어요. 2∼3년 동안 본 게 지금까지도 밑천이 됩니다. 거기서는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정신이 대단해요. 그에 비하면 우린 영화만 하더라도 자료가 거의 없을 겁니다. 나운규의 <아리랑> 프린트는 고사하고 그 이후 영화들도 보관이 제대로 안 된 건 문제예요. 영상자료원도 마찬가지에요. 보관이 능사는 아니지요. 체계적으로 자료를 관리하고 일반 국민들이 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알기론 지금 영상자료원은 마치 아무도 접근 못하는 고서를 쌓아둔 도서관이나 다름없어요. 모든 사람들이 즐겨서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거지요. 영상자료원을 국립 아카이브로 전환하자는 저희의 약속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당사의 플래카드에서 ‘미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는 걸 봤습니다. 스크린쿼터 또한 현행 유지를 주장해오셨는데요.

→ 폐지는 안 됩니다. 최소한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WTO 체제 아래서 문화개방은 당연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됩니다. 농업 개방이 국토를 황폐화시키는 것처럼 문화개방은 우리의 고유한 정신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중되고 표출되어야 하는 것처럼 세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몇개 팔고 휴대폰 몇개 팔기 위해서 스크린쿼터를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한-미투자협정 체결에 대해서도 저희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를 허용할 경우 스크린쿼터를 비롯한 각종 한국영화에 대한 지원은 협정에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 결국엔 폐지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당당하고 줏대있는 나라라면 외국 자본의 투자에 적절한 수준의 보호와 규제는 당연한 것입니다. 투자는 돈 가진 자들이 돈만 벌면 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통한 생산과 함께 이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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