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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의 유혹! 흔들리는 존재들! 바로 우리세계다
2002-12-13

먼 옛날, 중간계 어딘가를 굴러다니던 절대반지의 전설은 올해도 사람들을 ‘마료’시킬 태세다. 신들과 영웅들의 장대한 서사시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은 1편을 능가하는 스펙터클한 화면과 한층 격렬해진 악의 세계와의 싸움을 들고 19일 세계 최초로 한국과 미국의 관객을 만난다.

1편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를 본 관객이라면, 2편의 도입부에서 마법을 걸듯 흘러나오는 오프닝 타이틀만으로도 가슴이 울렁일 것이다. 그 타이틀을 따라 카메라가 돌면 ‘절대반지’를 없애기 위해, 악의 신 사우론의 통치지역인 모르도르의 불의 산을 향하는 호빗족 프로도와 샘이 있다. 1편이 세상을 지배할 절대반지를 없애기 위해 9명의 반지원정대가 모이는 과정이었다면 2편은 세 갈래로 나뉘어 이들의 모험을 따른다. ‘두 개의 탑’은 악의 신 사우론과 그의 편에 선 사악한 마법사 사루만의 동맹을 뜻한다.

탐욕과 공포와 의심의 시험은 <…두개의 탑>에서 한층 강화된다. 중간계의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종족인 반인족 프로도는 “왜 내게 이 반지가 주어졌을까”라는 고민을 간직한 채 충직한 샘과 여정을 재촉한다. 이들에게 나타난 골룸은 자신으로부터 반지를 빼앗아간 호빗족을 미워하는 한편 자신을 ‘믿어주는’ 프로도를 주인처럼 믿는 두개의 분열된 자아로 괴로워한다.

또 한 갈래는 호빗족의 메리와 피핀. 1편에서 우르크하이 무리에게 납치됐던 이들은 간신히 탈출해 신비한 숲의 종족인 엔트족, ‘나무수염’과 만난다.

마지막 일행은 아라곤과 엘프(요정) 레골라스, 드워프(난쟁이) 김리다. 이들은 메리와 피핀을 구하려고 우르크하이를 좇던 중 극적으로 되살아난 회색 마법사 간달프를 만난다. 발로그와 싸우다 불의 구덩이 아래로 떨어졌던 간달프가 ‘백색의 간달프’로 되살아나 펼치는 활약은 2편의 짜릿한 재미 중 하나다.

이들 일행이 다다르는 로한 왕국이 <…두개의 탑>의 주요무대. 인간의 씨를 말리려는 사악한 마법사 사루만 부대에 맞서 로한 왕국의 세오덴왕이 피신한 헬름협곡에서 벌이는 전투신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장관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분명함에도 어두운 헬름협곡 앞으로 끝없이 몰려드는 사루만 부대에 맞서는 나약한 인간들, 하지만 위엄과 신의와 우정을 아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처연하다.

<반지의 제왕>은 잘 알려졌다시피 이미 1편 개봉 전 3편까지 촬영을 마친 상태. 하지만 이 장면만은 1편과 <스타워즈 에피소드 2>의 반응을 본 뒤 보충촬영을 거쳤다. 제작진은 4만8천벌 이상의 갑옷을 제작했고 각각의 종족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긴 무기 2천개 이상을 만들었다. 여기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에도 시력, 청력, 촉감과 같은 감각을 부여해 각기 다른 표정과 성격으로 싸움을 벌이도록 했다.

호빗들의 고향 호비튼과 요정들의 보금자리 리븐델, 사우론의 모르도르 등 다양한 공간을 누빈 1편에 비해 2편의 배경은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깎아지른 듯한 산악을 잡기엔 적절하나, 물흐르는 듯 계속 움직이는 카메라에 식상할 수도 있고 몇몇 캐릭터는 실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격렬한 전쟁영화 같은 액션장면에서조차 한 순간 그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인간들을 잡아낼 때, 유한한 생명과 탐욕의 덧없음을 이처럼 웅장하고 우아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선과 악의 대립’이란 면에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주제는 단조롭다. 하지만 J.R.R 톨킨이 1954년 책에서 창조해냈던 세계가 그랬듯이, 그 선과 악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안에 존재한다. 피터 잭슨 감독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극도로 감성적이며 영웅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순간에, 그는 카메라를 뒤로 빼고 또는 다른 장면으로 넘겨버리는 방법으로 얄팍한 감상주의나 훈계조를 경계한다. 메리와 피핀은 중간계의 싸움에 끼지 않겠다는 나무수염을 향해 “댁들도 이 세상의 일부잖아요”라고 외친다. 인간들이 오늘도 ‘반지의 시험’에 들어 살고 있듯, 먼 옛날, 상상과 신화로 만들어진 이 세계는 바로 우리의 세계다.

●새로운 등장인물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의 새로운 인물 가운데 골룸과 세오덴은 ‘베스트 신인’이라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골룸은 실제 배우 앤디 서키스가 연기를 하고 그 연기를 따서 컴퓨터에 옮기는 ‘모션캡쳐’로 탄생한 인물이다. 1편에선 잠시 얼굴을 비췄지만 본격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00개의 근육과 250가지 얼굴 표정을 가진 골룸은 처음엔 징그러울지 모르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연민을 자아낸다. 원래 그는 스미골이란 이름의 호빗 비슷한 종족이었지만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뒤 영생을 얻은 대신 세상을 등져 버렸다. 반지를 뺏어갔다고 믿는 호빗을 저주하는 ‘골룸’과 프로도를 “우리를 지켜주는 주인님”으로 여기는 ‘스미골’이 벌이는 싸움은 악과 선에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에 다름 아니다.

세오덴은 인간의 영토인 로한 왕국의 왕. 영화에서 초반엔 사루만의 마법에 걸려 추하고 늙어버린 이성 잃은 인간으로 나오지만 간달프 덕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며 악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며 보이는 번민, 그럼에도 헬름협곡으로 몰려드는 사루만 군대에 맞서 결전을 준비할 때의 위엄있는 모습은 잊기 어렵다.

이에 반해 나무수염과 파라미르는 ‘워스트 신인’일 정도로 기대에 못 미치는 연기를 보였다. 사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나무수염이 어떻게 표현될지는 큰 궁금증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원작에선 ‘꿰뚫어보듯 깊은 눈’을 가진 ‘숲을 지키는 목동’과 같은 엔트족. 100% 3D로 그려진, 나이든 나무줄기에 두 눈을 껌뻑이는 영화속 모습은 코믹하게 느껴져, 후반부 싸움의 비장함을 떨어뜨릴 정도다.

1편에서 반지를 탐내다 숨진 반지원정대 일원 보르미르의 동생 파라미르는 영화속 이야기와 겉도는 느낌을 주며 원작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밖에 세오덴왕의 신하였지만 사루만의 편에 붙은 뱀혓바닥, 세오덴의 조카이자 아르곤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는 아름답고 용기있는 에오윈 공주, 에오윈의 오빠이자 영화 막판 지원군으로 헬름협곡에 돌아오는 에오메르가 2편에 새 얼굴로 합류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