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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살인의추억> 등 프로덕션디자인의 매력 <5>
2002-12-13

프레임을 빚는 마법의 손

<거울속으로>피흘리는 마그리트

이런 영화‥‥‥‥‥‥‥‥

혹시 거울에 비친 내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대는 장면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내 손엔 칼이 없는데 내 목엔 피가 흐르는 장면을. <거울속으로>는 소름끼치는 상상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거울 속에 또 다른 내가,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가정이라면,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처럼 의식하지 못한 순간 등골에 전율이 흐르는 영화를 기대할 만하다. 이야기는 화재로 폐쇄됐다 재개장을 앞둔 백화점에서 벌어진다. 마치 거울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죽인 것처럼 보이는 살인사건, 전직 경찰이며 백화점 보안책임자 우영민은 재개장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두려워하는 백화점 사장의 지시에 따라 조심스레 사건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우영민의 라이벌 하현수 형사가 사건에 뛰어들고, 사건현장을 찍은 화면이 방송을 타면서 사건은 꼬여간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상과 실물을 혼동해 동료 경찰의 죽음을 초래한 우영민은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딜레마에 빠져든다.

이미지 컨셉‥‥‥‥‥‥‥‥

최초에 <거울속으로>에 영감을 불어넣은 것은 르네 마그리트와 얀 반 아이크의 그림이다. 거울 속 인물과 밖의 인물이 똑같이 뒷모습을 보여주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실물과 반영’에 관한 통념을 단숨에 뒤집는다. 감독은 “거울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그것이 실물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떤 미스터리가 존재할까”라고 상상했다고 말한다. 반 아이크의 그림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전면에 신랑과 신부를, 후면에 볼록거울 하나를 그려넣은 작품. 볼록거울 속에 들어 있는, 전면에 없던 인물들은 화면에 깊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매우 낯선 느낌을 준다. 거울에 비친 저들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정적인 그림에 묘한 신비감을 부여한다. 이를 영화에 적용시킨다면 카메라는 렌즈의 반대편까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마그리트와 반 아이크에서 한발 나아가면 에셔의 판화가 있다. 에셔는 거울의 뒷면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공간, 상하좌우를 구분할 수 없는 공간,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을 표현했다.

이처럼 현실을 뒤집힌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거울속으로>는 순간순간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젤에 놓인 그림이 그림의 배경과 구분되지 않는다거나 깨진 유리에 배경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기이한 공간감을 잘 보여준다. 아마 이런 이야기에서 <상하이에서 온 여인>이나 <용쟁호투>의 거울방 장면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연결되는 면도 있지만 <거울속으로>에서 거울의 사용법은 두 영화처럼 한두 장면에 국한된 것도, 단순히 서스펜스를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다. 감독은 거울이 만들어내는 착각에서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를 본다. 그리고 영화는 그 경계를 넘나들 것이다.

공간의 이미지‥‥‥‥‥‥‥‥

거울로 만드는 신세계는 좌우대칭의 세계다.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할 수 없을 때 현실과 환상은 자유롭게 자리를 바꿀 수 있다. 때문에 제작진은 사각형으로 틀이 잡힌 구도에 집착한다. 영화의 주요 무대인 백화점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실제 상당수 백화점이 에스컬레이터를 경계로 양쪽 매장의 구조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누군가 에스컬레이터 가운데 거울을 갖다대놓은 듯한 이미지다. 시체안치소나 탈의실 역시 비슷한 느낌을 준다. 사각형 냉동고나 라커가 빼곡하게 들어찬 그곳은 현실에서도 거울 하나로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거울로 만드는 신세계는 깊이의 세계이기도 하다. 두개의 거울이 겹쳐질 때 평면에 생기는 이미지의 파노라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원근감을 만들어낸다. 프레임 안에 프레임이 연달아 이어지는 이런 현상은 굳이 거울이 아니어도 발견된다. 잠수교에서 볼 수 있는 교각의 연쇄는 같은 구조물이 이어지지 않는 다리에선 볼 수 없는 깊이감을 만든다.

헌팅 & 세트‥‥‥‥‥‥‥‥

“무엇을 보든 좌우대칭인지부터 보게 됐다.” <거울속으로> 제작진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 아파트에서 직사각형 탁자까지 통일된 이미지가 관건인 영화이기에 제작진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국의 숱한 백화점을 비교해 결정한 주요 촬영지 대전 갤러리아백화점도 이런 컨셉에 어울려 낙점된 곳이다. 이곳은 가운데 두대의 에스컬레이터가 백화점을 양분해놓은 듯한 장소다. 백화점에서도 이벤트홀은 영화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 제작진은 이벤트홀을 세트로 제작해 촬영한다.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은 이형주씨는 “150평 넘는 규모에 삼면이 거울인 세트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한다. 아직 설계도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호락호락해보이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삼면이 거울이라면 카메라와 조명기구는 어디에 숨길 것인가 제작진이 고안한 방법은 벽면이 기울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벽의 각도가 조절되는 세트라면 조명장치를 숨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영화는 어느 정도 컴퓨터그래픽의 도움도 받을 예정이다. 카메라가 거울을 향해 정면으로 있는 경우, 카메라와 제작진의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지우는 수밖에 없다. 세트촬영을 할 또 다른 장소는 거울을 보며 죽은 언니와 대화하는 쌍둥이 여자의 방과 거울이 두려워 미쳐가는 남자의 방. 구석구석 거울이 있는 여자의 방과 자기 모습이 비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남자의 방은 분명한 대조를 이루게 설계한다는 계획이다.

영화의 한 장면‥‥‥‥‥‥‥‥

2003년 1월1일 크랭크인할 예정인 <거울속으로>는 지금 테스트 촬영을 진행 중이다. 거울을 대고 찍는 장면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영화에서 쉽게 예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을 하는 중이다. 2장의 거울을 앞뒤로 놓고 찍은 배우 김혜나의 모습은 <거울속으로>가 보여주려는 신비감이 어떤 것인지 짐작게 한다. 거울에 구멍을 뚫어 정면에서 찍었지만 카메라가 보이지 않게 처리했다. 거울을 이용한 촬영에서 또 다른 어려움은 조명이다. 거울이라는 물체가 워낙 빛의 반사가 심해서 충분한 광량이 필요한데 조명이 측면에서 들어오면 조명장치가 화면에 보이게 된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쏘는 조명이 대부분이며, 그런 빛의 움직임이 색다른 화면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프로덕션디자이너 이형주

<거울속으로> 미술팀의 책임자인 이형주씨는 널리 알려진 프로덕션디자이너는 아니다. 영화경력은 <반칙왕> 의상디자인과 <버스, 정류장> 미술감독이 전부다. 하지만 무용, 의상, 설치미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던 그는 <거울속으로>에서 평소 자신의 창작욕을 자극했던 주제와 이야기를 발견하고 제작진에 합류했다. “전에 설치미술로 투명한 구슬로 만든 줄을 이어서 벽을 만든 적이 있다. 벽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 벽, 거울의 안과 밖을 그리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와 비슷한 면이 있다. 3년 전부터 경계를 허무는 혼동, 환상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그런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거울속으로>에 자극을 준 에셔의 판화도 이형주씨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 감독과 의기투합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으리라 짐작이 되는 요소들이다. “시나리오 초고를 보고 개인적인 일정상 합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는데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뉴질랜드에 갔다가 지난 8월에 국내에 들어왔는데 서점에서 <거울의 역사>라는 책이 눈에 띄었고, 곧이어 다시 하자는 연락이 왔다.” 이형주씨는 이런 과정이 “무슨 계시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앞으로 프로덕션디자인에만 매달리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거울속으로>가 성공한다면 개인적인 미술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며.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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