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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살인의추억> 등 프로덕션디자인의 매력 <1>
2002-12-13

프레임을 빚는 마법의 손

숙명처럼 영화는 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 최초의 영화가 그랬듯 21세기의 영화도 그 틀만은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다. 영화가 회화의 발전사를 엿보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캔버스에 펼쳐진 그림처럼 필름에 담길 이미지는 사각 프레임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본 세상이 미켈란젤로의 구도, 렘브란트의 조명, 르누아르의 색채를 동경하는 동안 영화는 아무 스스럼없이 자신보다 수천배 오래된 예술의 자양분을 빨아들였다. 처음엔 뤼미에르의 영화처럼 활동사진에 불과했지만 멜리에스 같은 선각자는 배경에 그려넣은 그림만으로 마술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 표현주의는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영화는 전통적인 무대미술로 담을 수 없던 <메트로폴리스>의 미래 도시까지 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도 어떤 측면에서 영화미술의 필요성에서 탄생했다. 원시시대든 21세기든 자유롭게 시간을 오갈 수 있고, 서부의 황무지부터 맨해튼의 빌딩숲까지 어떤 공간도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세트와 미술장치는 스튜디오의 필수품이었다. 프레임 안의 공간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따라 흘러간 시간을,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전지전능함을 얻게 된 것이다. 전후 네오리얼리즘영화처럼 어떤 인공적인 세팅도 거부하는 영화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영화미술이 손을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회화적 아름다움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채색하지 않은 자연, 꾸미지 않은 도시, 벌거벗은 거리에서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일 뿐이다. 오늘날에도 영화에서 미술의 기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과거 할리우드에서 영화미술의 꽃을 보여준 장르가 뮤지컬이라면, 지금 그것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으로 대변되는 판타지물로 바뀌었을 뿐이다.

국내에서 영화미술을 일컫는 ‘프로덕션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런 미술작업이 최근 새로 생긴 일거리는 아니다. 일례로 세트에서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펼쳐 보이는 이명세 감독은 프로덕션디자이너라는 직책이 없던 시절, 프로덕션디자인을 직접 했던 인물이다. <인정사정 볼 것없다>를 찍을 때, 예전에 노트에 붙여놓은 노란색 껌종이를 보여주며 연출부에게 이런 노란색이 배어 있는 은행나무 낙엽을 모아오라고 한 일화는 이명세 감독이 누구보다 뛰어난 프로덕션디자이너임을 보여준다. 실상 작가로 불리는 대다수 감독들이 미술에 대한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인물임은 우연이 아니다. 프레임을 자신의 비전으로 채워넣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처음부터 화가이고 미술가이다. 하지만 감독이 모든 일을 직접 할 수는 없기에 영화는 필연적으로 전문적인 미술 담당 스탭을 불러들인다. 프로덕션디자이너, 아트디렉터, 세트디자이너, 인테리어디자이너 등이 그들. 한국영화가 시스템을 갖춰가면서 이런 스탭들이 세분화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번 특집은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데 필수적인 프로덕션디자인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촬영을 마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현재 촬영 중인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용이 감독의 <밑줄 긋는 남자>, 아직 촬영에 들어가지 않은 김성호 감독의 <거울속으로> 등 5편은 영화미술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시각 이미지를 갖춘 영화들. 비주얼에 야심을 가진 이들 영화에서 영화미술의 매력에 취해보자는 제안인 것이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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