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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자연다큐멘터리 <야생의 초원,세렝게티>
2002-12-14

어떤 `인간주의적` 오해

동물을 찾아나서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미개인을 찾아나서는 인류학자의 시선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자신들의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을 찾아나선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그들을 뚫어져라 관찰한다는 것, 세 번째로 그들의 행동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 다 모두 선한 의도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전자에게 그것이 인류문명에 의해 위협받는 자연의 보호라면, 후자에게는 미개인의 개화, 좀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을 고르자면 타자에 대한 이해가 될 것이다.

MBC 창사 41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특집 HD다큐멘터리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이하 <세렝게티>)도 이러한 자연다큐멘터리의 도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동물들을 찾아 세렝게티로 떠났고, 200여일 동안 그들을 집요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인간주의가 넘치는 언어로 그들을 해석해냈다. <세렝게티>에 나오는 한 장면을 살펴보자.

(화면) 대열에서 뒤처진 새끼 사자를 어미 사자가 무심히 바라본다.

(내레이션) “그러나 어미는 어리광을 용서하지 않는다.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우선 끈기와 인내심부터 배워야 한다.”

꽤 괜찮은 해몽이다. 문제는 아무런 검증도 없이 인간적 감성으로 치장된 해석이 (동물들의) 진실인 양 말해진다는 것이다. 어미 사자의 무심한 시선을 끈기와 인내심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라이온 킹>적 상상력이다. 이런 해석이 반복된 결과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애, 수컷과 암컷의 사랑, 또 어미의 지극한 모성애’라는 지루한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물론, 자연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할 것이다. 노력하면 배울 수 있는 미개인의 언어와는 다르게 동물의 울부짖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따라서 그들의 행동을 그들의 입장에서 해석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일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자연다큐멘터리들이 이러한 인간주의적 해석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동물들의 몸짓을 이해하려는 열정은 안일하게 쓰여진 감동스런 문구 몇 마디로 너무나 쉽게 대체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세렝게티>가 도저히 구제 불가능한 실패작이라는 말은 아니다. 한스 짐머 특유의 장엄한 배경음악과 함께 펼쳐졌던 아이맥스용 다큐멘터리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BBC>나 <NHK>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작한 자연다큐멘터리들과는 한판 붙어볼 만해 보인다. 특히 선명한 HD 화면으로 보는 세렝게티의 초원은 아이맥스의 호쾌함과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것이 국내 최초로 제작된 아프리카 자연다큐멘터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자못 다음번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문제는, 앞서 지적했듯이 기존 다큐멘터리의 용법에서 전혀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관성적 태도이다. 비슷비슷한 출연진(사자, 누우, 악어, 치타, 표범)에, 별 다를 것 없는 내레이션. 200여일간의 촬영기간과 5억원이라는 예산을 소비한 결과가 이 정도라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제작진 스스로는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는 야생 동물의 생태”를 “약육강식의 세계에 열광하는 서양인의 시각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소프트한 동물 프로그램도 아닌” 방식으로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지만 결과는 그저 ‘최초’라는 단어에 만족해야 하는 범작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진지한 다큐멘터리에서 가벼운 오락프로그램까지, 동물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이제 TV편성표에서 빠지지 않는 인기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인기와 함께 그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다지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애완동물들을 개그맨 취급하는 오락프로그램이나, 진실인 양 하며 동물의 행동을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해대는 다큐멘터리나 인간주의적 아전인수에 몰두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19세기 말, 파리와 런던의 박람회장에 빠지지 않고 전시되던 품목 중 하나는 살아 있는 미개인들이었다. 우리는 마치 이 미개인들을 구경하듯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서구 중심적 시선이 미개인들에게 재앙이었듯이, 인간 중심적 시선 또한 동물들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관심일 수 있는 것이다. 김형진/ 자유기고가 ofotherspac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