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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연스러운 몸짓 부각시킨 <트롬>과 <카이>
2002-12-14

아,저 `몸`!

고소영(30)과 전지현(21). 나이 차는 있지만 예쁘기로는 순서를 매기기가 힘든 두 미녀의 몸짓이 시선을 매혹하고 있다. 외모와 이미지의 힘이 강력하다고 소문난 이들이 광고의 여신으로 자리잡은 것은 이미 오래됐다. 참 많다 싶을 만큼 여러 제품의 CF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며 소비자의 대리만족과 모방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입꼬리를 올려 살짝 웃어만 주어도 마음이 스르륵 녹을 지경이니, 이 광고 저 광고가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음에도 앞다투어 이들을 영입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드럼 세탁기브랜드인 트롬 CF와 이동통신브랜드인 카이 CF는 고소영과 전지현의 출연작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지만 ‘뷰티(Beauty) 전략’의 새로운 경향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시선을 자아낼 만한 미모의 모델을 제품 자랑의 화자로 앞세우는 것은 고전적인 방식이다. 미인의 기본적인 임무는 최상의 표정과 포즈로 소비자의 심미안을 자극하고, 또 그것을 제품의 이미지로 전이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롬 광고와 카이 광고는 기존 사례와 다르게 미인을 활용했다. 인과관계가 없는 모델의 자연스러운 동작을 비중있게 포착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먼저 트롬 CF. 화면의 구성요소는 정중앙에 배치한 트롬 세탁기와 고소영이다. 온통 하얀 배경 아래 모델이 세탁기에 빨랫감을 집어넣고, 세탁기 주변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깨끗이 세탁된 옷을 입으며 이보다 더 좋은 느낌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장면이 이어진다.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영상미가 산뜻하게 눈길을 낚아챈다. 속옷, 스웨터 등 빨랫감의 소재와 ‘오래오래 느끼고 싶어서’란 카피를 통해 옷감의 손상을 방지한다든지, 세탁력이 강하다와 같은 트롬의 기능성을 명쾌하게 부각한 방식도 돋보인다. 미학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도 실컷 전하고 있는 것이다.

변정수-변은정이란 자매 모델을 기용한 트롬의 론칭 CF도 간명한 메시지 및 영상처리로 남다른 멋과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층을 파고든 바 있다. 이번 광고는 좀더 지명도가 높은 고소영을 내세워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품격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론칭 광고뿐 아니라 이 광고에서도 빨래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다. 기존 세탁기 CF는 세탁기가 주부의 가사영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제품인 양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트롬 CF의 고소영은 처녀 같은 기혼녀인 미시인지, 독신녀인지 분명하지 않다. 독립적인 공간에서 나만의 여가를 즐기듯 세탁기와 지극히 부담없이 어울리고 있을 뿐이다. 세탁기 위에 올라가 운동하듯 두 다리를 벌리고, 세탁기를 배경으로 물구나무를 서는 등 고소영의 유연한 몸 동작이 그같은 인상을 준다. 이 대목이 내용 전개의 밋밋함을 상쇄하기 위함이었는지, 시청자의 눈요깃거리를 겨냥한 것이었는지 제작진의 의도를 세세히 가늠할 순 없지만 일말의 억압도 없는 자유의 기운을 듬뿍 전하며 제품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다.

빨래방을 배경으로 삼은 카이 광고 역시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숙하는 대학생인 듯한 전지현은 콧잔등에 펜을 올려놓는 등 일상적인 동작을 자연스럽게 취하며 세상사는 재미에 대해 논한다. ‘언니는 결혼하고 나서 아줌마가 됐다. 결혼하기엔 세상이 너무 재밌다’는 내레이션을 들려준 뒤 배꼽티를 입은 채 춤을 추며 ‘Why be normal’이란 슬로건을 전한다. 카이가 여성 대상의 특화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이 CF는 전지현을 통해 20대 초중반의 여성을 공략하고 있다. 결혼에 반기를 든 메시지와 젊은 모델을 기용한 데에는 주로 20대 중반 이상의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드라마, 카라 등 경쟁사의 여성전용 이동통신 브랜드에 차별적으로 대항하겠다는 노림수가 담겨 있다.

이 광고의 목표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나이여서 그런지 결혼하기엔 세상이 너무 재밌다는 단정적인 메시지에 아쉽게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진 못했다. 그러나 청춘의 특권 같은 모델의 당찬 매력은 부러움을 자아낸다. 이번에도 전지현의 몸은 기대를 어기지 않았다. 그것은 잘 타고났고 또 잘 가꾼 몸매 때문만이 아니다. 또 예전에 유명세를 탄 삼성 마이젯 CF의 테크노 댄스 같은 현란한 춤 실력 때문도 아니다. 연출된 안무없이 ‘내 맘대로, 내 멋대로’ 흔드는 것 같은 그의 몸짓이 오히려 해방감을 선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방송을 타고 있는 두 광고에서 30대 고소영과 20대 전지현은 여성의 육체미를 다른 각도로 발현한 듯 보인다. 근사한 옷의 치장이나 의도적인 노출로 섹시함 같은 상투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몸짓을 통해 충만한 자아를 뽐내는 것이다. 이것 역시 관음증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열등감을 감추는 과시와 다른, 당당한 여성의 몸을 마주한 것 같아 신선하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