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충무로, 매니지먼트 전쟁시대 [1]
이영진 2001-04-20

3대 골리앗의 싸움 파이키우기인가, 땅따먹기인가

강제규 필름 매니지먼트 진출임박, 싸이더스.튜브와 스타 확보 대전 점화될 듯

영화계의 매니지먼트 사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싸이더스, 튜브 등 메이저 제작사 및 투자배급사가 매니지먼트 사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강제규필름도 조만간 이 사업에 뛰어들 태세인 것이다. 강제규필름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현재 매니지먼트 사업 추진을 위한 자본 및 관리인력 확보 등의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그동안 매니지먼트쪽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해온 강제규필름으로서는 이 사업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제규필름이 매니지먼트 사업을 위한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자 영화계가 술렁이는 것은 당연하다. 먼저, 제작사들은 배우들의 과점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사업규모가 1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 나돌면서 제작사들의 우려는 예상한 것 이상이다. 심지어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3강 체제 형성으로 더이상 A급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은 포기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말들도 오간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덩치가 커진 제작사들이 대규모 투자유치를 위해서 관련 사업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지만 “제작을 겸한 거대 매니지먼트회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영화를 같이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의 사업이 독점적인 상행위의 확대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 같다”라고 말한다. 기존의 스타들을 끌어들이면서 아무래도 배우들이 소속 영화사의 작품들에 비중을 두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배우 몸값 때문에 영화 못 찍는다?

메이저 제작사와 한몸인 거대 매니지먼트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배우들의 ‘몸값’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한 제작사 관계자는 전작 출연료의 2배를 매니지먼트사가 요구해 계약을 포기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자사가 투자하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에 상당하는 액수에 도장을 찍은 것은 “제작을 겸한 매니지먼트사 내부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가격 담합”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일반 제작사들은 “배우의 개런티 상승이 초래할 제작액수 증가는 결국 위험 부담이 제작사의 몫으로 떨어진다”고 푸념하고 있는 형편이다.

싸이더스와 튜브의 최근 영화들의 캐스팅 경향은 이런 우려를 북돋우고 있다. 싸이더스의 경우, 이미 개봉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전도연을 비롯해서 <인디안 썸머>의 박신양, <무사>의 정우성, <화산고>의 장혁 등 자사 영화에 자사 소속 배우들이 연이어 주연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싸이더스보다 늦게 출발한 튜브매니지먼트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튜브픽처스가 제작하는 첫 번째 영화 <파이란>에 최민식이, <튜브 2030>에 김석훈이 주연을 맡는 등 넉넉한 자본으로 가능해진 많은 투자, 제작 작품들에 1급 배우들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역할을 자사 매니지먼트 사업부문이 맡고 있는 것이다. <베사메무쵸> <야다> 등 4편을 동시에 기획, 제작하고 있는 강제규필름의 경우도 싸이더스, 튜브 등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란 것이 일반 제작사들의 걱정 섞인 전망이다.

이같은 반응에 대해 싸이더스, 튜브 등은 ‘억지’라고 반박한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싸이더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제작쪽과 매니지먼트 사업을 단순히 연계해선 안 된다. 그러는 순간 양쪽 모두 자멸할 수 있다”고 해명한다. 캐스팅이 적절하지 않은데도 굳이 자사 영화에 출연하라고 배우에게 강요할 경우, 그 위험 부담은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 양쪽 모두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싸이더스의 <봄날은 간다>에 타사 소속 배우인 유지태, 이영애를, 신씨네에서 제작하는 <엽기적인 그녀>에 차태현, 전지현 등 자사 소속 배우를 출연시키는 것도 다 그런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함이다. 튜브매니지먼트의 전영민 상무 또한 “배우 매니지먼트의 경우 음반쪽과 달리 수익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자사 영화에만 출연해서는 매니지먼트 사업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송강호, 김석훈 등과 함께 튜브매니지먼트에 속해 있는 최민식의 경우 차기작으로 임권택 감독의 작품 <오원 장승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매니지먼트 회사도 제작 참여 움직임

사실 매니지먼트 사업 자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배우 매니지먼트의 경우, 출연작과 광고 개런티만으로는 소속 배우들의 계약금, 관리비 등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그럼에도 매니지먼트 사업에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금융자본을 비롯해 영화계에 쏟아지는 자본이 너무 많아서라고 지적한다. 투자 자본을 구하기는 쉽지만, 이에 비해 배우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에 비할 정도다. 그러니 배우 군단을 거느리고 있는 것만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누가 출연하느냐”는 문제는 “얼마를 끌어올 수 있느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코리아픽처스의 김장욱 한국영화팀장은 “투자사의 입장에서 캐스팅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다. 스타들을 어렵지 않게 기용할 수 있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라고 말한다. 싸이더스, 튜브 등 제작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매니지먼트사들이 스타급 배우들을 앞세워 영화제작에 뜻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영애, 이나영, 송윤아, 한고은 등이 소속되어 있는 에이스타스의 경우 지난해 법인 설립 이후 곧바로 <주유소 습격사건>을 기획한 이관수 프로듀서를 영입,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고 장동건, 이병헌, 고소영 등이 포진한 MP엔터테인먼트나 진희경, 신은경 등이 소속된 윌스타엔터테인먼트 등도 자체적으로 영화제작의 뜻을 갖고 있다.

한편, 강제규필름이 매니지먼트 사업에 착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싸이더스, 튜브 등도 경계하는 눈치다. 두 기업의 관계자들은 각각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생기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거나, 우리가 목표하는 매니지먼트사의 모델과 다르니 관심이 없다는 말로 피해가고 있지만,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한 과정에서 스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강제규필름이 신인들 위주로 간다고 하지만, 신인 발굴이 용이치 않은 상황에서 기존 배우들을 영입할 것이다”라고 전망하면서, “시장을 넓혀가는 선의의 경쟁이라면 모르지만, 배우 빼내기 등 땅따먹기 식이라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웬만한 배우들이 대부분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된 경우이기 때문에 이들을 데려가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데, 이는 수익 모델이 많지 않은 업계 현황을 고려할 때 스스로 수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3대 골리앗 시대, 주사위는 던져졌다

자본력을 앞세운 거대 제작·매니지먼트사에 대한 좀더 강한 비판도 있다.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문성근 이사장은 “강제규필름의 매니지먼트 사업 진출은 싸이더스와 튜브를 겨냥한 것이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고 말한다. 과녁이 된 두 기업의 관계자들은 여기에다 “강제규필름이 과연 매니지먼트 사업을 운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황우현 이사는 “강제규필름이 매니지먼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6개월 전부터 들어왔다. 그동안 어느 정도 준비를 했으리라 믿지만, 만약 즉흥적인 발상의 결과라면 별 재미를 못 볼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작 제작에 주력하기보다는 여러 사업을 펼치는 데 너무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따른다. 황 이사는 “강제규필름의 사업들에는 명확한 목표가 없다. 극장 사업을 한다는 것은 배급을 하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외화 수입 등 배급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매니지먼트 사업 또한 단순히 사업 분야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 역시 “우리는 개별시장 자체의 한계성에 대한 불안 때문에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라며 “강제규필름처럼 신규 사업만 띄워놓고 1등을 하겠다는 포부는 과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제규필름의 유봉천 부사장은 “매니지먼트 사업은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이제 안정적인 운용시스템을 갖춘 상태”라고 말한다. 또한 “신인 연기자 발굴에 중점을 둘 계획이므로, 불필요한 과열경쟁은 없을 것”이라며 영화계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강제규필름이 새 매니지먼트회사를 세울지, 기존 매니지먼트사를 인수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업계에선 후자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강제규필름은 4월 안으로 매니지먼트 관련 계약을 확정하고, 5월 초에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2000년 싸이더스와 튜브 등 거대 제작사들이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고 에이스타스, MP엔터테인먼트 등 기존 매니지먼트사들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시기를 지나 2001년 강제규필름이 ‘스타’를 쟁취하기 위해 출사표를 내놓으려는 지금, 충무로는 바야흐로 또다른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