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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2001-04-20

서양인의 환상, 내 머리속의 오물

우리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기만 하다면 기꺼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동참하여 백인의 판타지 속에서 그들과 함께 동남아의 ‘성적 환락’에 빠지고 중국인의 ‘더러움’에 대해 한껏 혐오감을 느끼고 티베트의 숭고한

‘종교성’을 동경하며 이슬람의 ‘야만’에 경악하며 우리보다 눈이 째진 베트콩의 ‘집요한’ 항거에 질겁한다.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펴냄/ 1만8천원

영화가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을 비판하는 무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 보다는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하고 확산하는 장치인 경우가 훨씬 많다.

만일 이 스테레오타입이 사회적 적대의 원천이 된다면, 그때 영화는 단순한 여흥거리 이상의 짓을 하는 셈이다. 영화 비평이 대량 생산된 영화

세계에 접근하는 소비자의 선택에 개입하려는 행위인 한, 비평의 주요 과제는 영화에 깃든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또 영화에 담긴 진리내용을 구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비평의 태도는 비평적 실천을 매개로 한편으로는 영화 제작자의 자의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인들의 영화 수용의 지각체계로

침투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실은 불쾌함을 느껴야 마땅한 영화 텍스트에서 쾌락을 느끼는 이중으로 불쾌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그런

텍스트의 생산을 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미 우리가 몸을 담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왜곡된 지각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니 이런 문제에 대해

종일 생각하고 고민하여 다시 눈 부릅뜨고 영화를 보는 것도 일종의 수행일 텐데, 이 수행의 길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만큼

도움이 되는 책도 별로 없을 게다. 물론 이 한권의 책이 영화를 관통하는 숱한 이데올로기 전부에 대해서 혜안을 얻게 해줄 수는 없다. 그걸

바란다면 바라는 사람이 못나고 게으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서구가 창안하고 서구가 지배하고 있는 영화의 세계가 비서구를 표상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지각의 틀을 가다듬게 해준다.

서구가 만들어낸 비서구에 대한 표상은 단순한 의미에서 낯선 타자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 아니다. 서구가 자신의 타자를 동양으로 정의하며, 자신으로부터의

거리에 입각하여 상상의 지리지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배치해 넣고 형상을 불어넣은 것은 자신이 잃어버린 순진성에 대한 향수, 자신이 떨치고 일어선

유아적인 것에 대한 경멸, 향유해보지 못한 쾌락에 대한 미련, 다스리고 정복해야 할 어떤 야만, 혹은 어느새 자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위험요인, 그도 아니면 자신의 문명으로부터 내뿜어 나오는 은밀한 불안의 투사물이다.

어쩌면 이런 수준의 인식은 비서구인들에게는 이미 자생적으로 체득되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사실 서구영화에서 우리들이 모욕당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우리가 그런 장면에서 욕지기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기조차하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비천하게 다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그만큼 인식론적으로는 안주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를 상기해보라. 그는 이 영화를 통해서 왜곡된 적대 속에서 자멸적인 싸움을 벌이는 소수인종들간의 갈등을

비쳐준다. 이 영화에는 도무지 지배자인 백인들이 부재하는데, 이 분명한 부재가 그들이야말로 전체 갈등의 구조를 생성하는 자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준다.

요컨대 이 영화의 정치적 교훈은 우리들, 또는 소수인종들이 어떻게 서구 지배층의 오리엔탈리즘을 자기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기만 하다면 기꺼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동참하여 백인의 판타지 속에서 그들과 함께 동남아의 ‘성적 환락’에 빠지고

중국인의 ‘더러움’에 대해 한껏 혐오감을 느끼고 티베트의 숭고한 ‘종교성’을 동경하며 이슬람의 ‘야만’에 경악하며 우리보다 눈이 째진 베트콩의

‘집요한’ 항거에 질겁한다. 우리가 오리엔탈리즘의 논리를 체득해야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타자의 인지체계를 비판하기 위해서지만, 그

과정은 동시에 타자의 인지체계에 종속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이드의 책을 통해서 우리가 이르러야 하는 곳은

서구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간 자기 비판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이드를 경유함으로써 한층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영화를 가로지르는 매우 복잡한 서사 전략을 평면화하고,

한 영화가 정치적 오류를 통해서 동시에 도달하는 진정한 어떤 면을 못 보게 할 위험이 있다. 여기가 어려운 지점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지점에

서서 심미적 기준을 가다듬기 위해서도 사이드를 읽는 일은 일차적으로 요구된다.

▶ 영화의

친구들, 엉뚱한 책을 권하다

▶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리

실버의 <리메이킹 에덴>

▶ 홍성용의

<영화 속의 건축 이야기>

▶ 최영애의

<중국어란 무엇인가>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 장호연·이용우·최지선의

<오프 더 레코드: 인디록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