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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 뉴욕시사기 [3]
2002-12-16

19세기 중반, 뉴욕은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1945년 아일랜드 감자기근에 이어 대규모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일주일에 1만5천명 넘게 뉴욕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에겐 일자리도 살 집도 없었다. 나라는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시 가난한 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럽고 복잡한 공간인 ‘파이브 포인트’에서 살았다. 정치계의 부패는 만연했고 경제사다리의 하위단계에 있는 갱들은 끊임없이 경제적이고 신체적인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조그만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 이름도 찬란한 플러그 어글리즈(불량배)파, 로치 가드(바퀴수호대), 데드 레빗(죽은 토끼)파, 셔츠 테일(셔츠 자락)파, 바워리 보이즈(술집소년들)파 등의 아일랜드갱들은 그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많은 수의 유권자들 때문에 가장 힘있는 태머니당의 머리 수를 채워주는 것으로 실질적인 정치파워를 얻었다. 그러나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의 압력으로 1863년 뉴욕에서는 강제징집폭동이 일어났다. 화약고의 불씨는 댕겨진 것이다. 300달러를 내면 징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는 가난한 이들은 군대로 가서 총알받이가 되라는 말과 같았다.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이 선택할 방법은 폭동밖에 없었다. 4일간의 징병폭동 끝에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는 이 시기는 포연 속에 사라지고 잊혀져갔다.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 스코시즈는 우연히 허버트 J. 애스버리가 쓴 <갱스 오브 뉴욕>이란 책을 친구의 서재에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8세기 초부터 1928년까지 뉴욕 거리갱들에 대한 연대기였다. 그는 즉각 애스버리의 책이 기술한 세계를 자신이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와 연결시켰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각 그의 오랜 친구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제이 콕스 역시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이 콕스가 리서치를 시작하기 이전에 많은 것들이 이미 조사되어 있었다. 뤽 산테의 책 <로 라이프>를 비롯해 <뉴욕의 빛과 그림자> 등은 당시 이민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많은 부분을 따온 것은 허버트 애스버리의 <갱스 오브 뉴욕>이었다. 또한 최초의 시나리오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한 노래에서 시작되어 역시 그의 노래인 <아담은 카인을 키웠다>(Adam raised a Cain)의 가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꿈의 어두운 심연에서 사라졌지만 잊혀지지 않은”(Lost but not forgotten from the dark heart of a dream).

스코시즈는 1977년 <버라이어티>에 광고를 게재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곧 유보되고 말았다. 1980년의 도래와 함께 감독들이 대규모의 예산으로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 시대는 끝이 난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제작상황은 나빠졌을 뿐 아니라 뉴욕은 이미 1860년대의 뉴욕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그 시절의 동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마을 전체가 새로 만들어져야 할 판이었다. 제작사가 바뀌고 프로듀서가 바뀌는 힘든 시기를 지나 1990년대 초반 마침내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은 해외판권을 가지게 될 이니셜의 그레이엄 킹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카메론 디아즈 그리고 대니얼 데이 루이스라는 놀라운 주연급 연기자들과 함께 캐스팅되었다. 단테 페레티가 로마의 세트를 디자인 했고 샌디 파웰이 의상을 창조했다. 마침내 2000년 9월, 스코시즈는 단테와 그의 놀라운 스탭들의 손에 의해 빚어진 로마 치네치타 스튜디오의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곳에 19세기의 뉴욕이, 그가 그토록 담고 싶었던 공간이 그대로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갱 오브 뉴욕>은 뉴욕이란 도시의 창세기에 가까운 영화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속속들이 모른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아비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수하로 들어간 아들이 그로부터 아이로니컬하게 아버지를 느끼지만 결국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얄궂은 운명에 빠져들어간다는 이 고전적인 서사극은 그 자체로도 묵직한 감동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는 쟁쟁한 주연배우들을 제외하고도 내실있는 조연들의 면면으로 더욱 풍부한 입체감을 지닌다. 극의 초반부에 잠시 등장하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남기는 프리스트 발론 역의 리암 니슨을 비롯해 태머니당의 보스이자 부패정치인 트위드로 등장하는 짐 브로드벤트가 있고, <E.T.>의 엘리엇으로 등장했던 헨리 토머스는 암스테르담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가 제니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를 배신하는 조니로 출연해 장성한 모습을 선보인다. 또한 <빌리 엘리어트>의 아버지였던 게리 루이스는 “태어나서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뉴욕”의 과거를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스코시즈는 제니가 도둑질을 위해 하녀로 위장해 들어가는 업타운의 부잣집 주인으로 잠시 등장한다. 게다가 살인마의 골목에서 갱들이 의대생들과 시체를 흥정하는 모습이라든지 <뉴욕 트리뷴>의 당시 기사스크랩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세밀한 고증(몇몇 날짜는 ‘영화적 허용’에 의해 바뀌었다)을 통해 그 시절의 복장, 수백개의 다른 악센트, 세트의 질감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해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나는 <갱스 오브 뉴욕>은 세기에 남을 대작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얼마나 많은 뉴요커들이 그 주에 죽어나갔는지 우리는 모른다. 마침내 싸움이 끝났을 때, 모든 영토의 경계는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얼마나 많은 피들이 이 도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뿌려졌던지 간에, 한때나마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4일낮 4일밤의 처절한 전투가 끝나고 포타스 필드 공동묘지의 아버지 무덤 옆에 빌을 묻은 뒤 울려퍼지는 암스테르담의 마지막 되뇌임은 화려함 속에 가려진 미국이란 나라가, 뉴욕이란 도시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단련되어왔는지를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것이다.뉴욕=백은하 lucie@hani.co.kr▶<갱스 오브 뉴욕> 뉴욕시사기 [1]▶<갱스 오브 뉴욕> 뉴욕시사기 [2]▶<갱스 오브 뉴욕> 감독 마틴 스코시즈 인터뷰▶<갱스 오브 뉴욕>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인터뷰▶<갱스 오브 뉴욕> 대니얼 데이 루이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