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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연·이용우·최지선의 <오프 더 레코드: 인디록 파일>
2001-04-20

90년대의 어둠, 옐로우 키친을 아세요?

나는 음악을 모르는 영화감독들을 혐오한다. “음악? 영화 끝판에 아무에게나 맡겨서

빨리 토해내게 하면 그만 아냐?” 하고 생각하는 감독들이 흥행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짜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절대 없다고 믿는다.

성기완 | 대중음악평론가

문학과 지성사 펴냄/ 5천원

영화쟁이들은 연대기에 충실해야 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시대에 어떤 일이, 어느 날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지를 등한시하면 안 된다.

그것들이,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들이 그렇게 짜맞춰지는 과정은 시놉시스를 쓰고 장면들을 구상하거나 수집하여 최종적으로 ‘ready go!’를

외치는 그 흥분된 과정과 흡사하다. 사건들의 연대기적 전개과정을 연대기로 읽는 일은 벌어진 일들을 어떤 시각의 관점에서, 때로는 정사의 엄정한

눈으로, 때로는 야사의 삐딱한 눈으로 재구성하여 만든 내러티브를 훑어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반대일 수도 있다. 한 시선이 일부러, 혹은 어쩌다가

보지 않았거나 보지 못한 숨겨진 것들의 내러티브를, 그 망각의 것들을,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시간들을 목격하는 일일 수도 있다. 카메라가 있고

라이트가 비치면 보이는 것이 생기지만 그 ‘생김’에 의해 영역지워진 것 바깥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카메라의 시선 바깥을 ‘보이지 않도록’

영역지우는 예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공간에 대한 연대기적 해석의 지평을 설정한 뒤 그 바깥을 체계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연대기를 기술하는 체계적인 기술법의 일종이다.

대중음악에 관한 잡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쟁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오프 더 레코드: 인디록 파일>(장호연,

이용우, 최지선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1999)이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중요한 문화적 테마 중 하나였던 이른바 ‘인디록’에 관한

일종의 역사적 연대기로 읽힐 수 있다. 지은이들은 어떤 ‘관점’을 정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90년대 대중음악의 흐름을 이루는 다기한

요소들 중에서 다른 건 배제하고 인디록이라는 장르에만 집중적으로 라이트를 비춘다. 그렇게 하여 인디록은 ‘환해지고’ 그 바깥의 것들은 어두워진다.

사실 대중의 관점에서는 인디록은 ‘어둡고’ 그 바깥의 것들, 예를 들어 핑클이라든지 H.O.T 같은 것은 ‘환하다’. 서태지는 더욱더 환하다.

대중은 공중파 같은 일반 매체의 그 화려한, 돈빨 오른 조명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 책은 대중이 익숙한 그 조명방식과 정반대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의 관점이 얼마나 투철한지는 책의 표지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표지에는 1990년대의 대표적인 인디록 밴드인 옐로 키친이 만들었던, 정규

앨범도 아니고 ‘데모 테이프’에 해당하는 음반인 (원래 이 밴드는 가사도 영어고 음반 제목도 당연히 영어다)의

음반 재킷이 배경 그림으로 나와 있다. 처음에 이 책의 표지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책 제목이 ‘인디록 파일’인데 무슨 이상한 그림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들이 비추고 있는 라이트의 기준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책을 다 읽고나면, 옐로 키친이란 밴드는 이들이

비추는 라이트의 가장 환한 감도에 해당하는 빛을 받고 있는 밴드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고, 그제서야 약간은 조잡한 듯한 느낌의 이 표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쯤 되면 영화쟁이들 중에 ‘옐로 키친? 그게 무슨 밴드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한다. 젊은 영화쟁이들 중에서는 그래도 옐로

키친 같은 밴드를 알고 있는 축들이 좀 있을 것이나 조금 나이가 든 영화쟁이들, 그것도 충무로에서만 활약하던 사람들 중에서는 옐로 키친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줄로 굳게 믿는다. 충무로 영화판이 좋아하는 음악스타일을 영화를 통해 넌지시 짐작건대 대강 그렇고 그런, 달콤새콤한,

까놓고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괜히 음악이 튀어서 영화 망칠 가능성은 절대 없는 통속적인 음악일 것이 거의 확실하니 옐로 키친 같은 밴드를 알

리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모르는 영화감독들을 혐오한다. “음악? 영화 끝판에 아무에게나 맡겨서 빨리 토해내게 하면 그만 아냐?” 하고 생각하는 감독들이

흥행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짜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절대 없다고 믿는다. 그림에 조예가 깊고 드라마트루기에도 일가견이 있으나 음악에는

깡통인 친구들이 자기 눈과 머리만 믿고 영화 만드는 건 정말 헛된 짓이니 제발 그런 짓은 말아다오.

이참에 옐로 키친도 모르는 영화쟁이들은 우선 책은 나중에 사서 읽고 그들의 음반을 좀 구입해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실은 <…인디록

파일>이라는 책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밴드들의 음반을 좀 사서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1990년대가 ‘실제로’ 어떤 시대였는지

짐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조명과 정반대의 방향을 택한 이 책이 실제로 한 시대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좀 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 하나의 시대에 관한 연대기를 영화라는 매체로 짜낼 때 무엇을 보려 하고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해야 할지에

관한 조그마한 지침이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영화의

친구들, 엉뚱한 책을 권하다

▶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리

실버의 <리메이킹 에덴>

▶ 홍성용의

<영화 속의 건축 이야기>

▶ 최영애의

<중국어란 무엇인가>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 장호연·이용우·최지선의

<오프 더 레코드: 인디록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