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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영어 완전정복>
2003-01-03

영어로 사랑할까요?

작금의 세계화 시대를 맞아, 영어는 단지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가리키진 않는다. 영어는 동아시아 변방에 사는 보통 사람에게도 생존을 위한 구명대요, 교양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이며, 지위를 업그레이드하는 연료로 받아들여진다. 스물 몇해를 사는 동안 단 한번도 영어가 자신의 삶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 없던 동사무소 말단 공무원 영주 또한 이 영어의 ‘광풍’을 피해갈 수 없다. 동장님의 ‘세계화 시대의 공무원론’에 이끌려 억지로 영어학원에 등록한 영주는 영어에 관심도, 실력도 없는 탓에 학원생활이 괴롭다. 그러던 그녀에게 서광이 비치니, 난생처음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남성 문수를 만난 것. 천성이 바람둥이인 문수의 의례적 행동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한 영주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영어에 매진한다. 영어를 매개로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을 로맨틱코미디로 담는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영어 콤플렉스를 통렬하게 부수려는” 김성수 감독의 바람을 담고 있다. “언어나 사랑이나 결국 마음을 활짝 열 때 진정으로 소통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연출을 결정한 뒤로 김성수 감독은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느끼고 있다. ‘김성수가 무슨 로맨틱코미디냐’는 의아함과 불만, 그리고 어이없음이 뭉뚱그려진 반응 때문이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를 통해 남성들의 거친 세계를 담아온 그의 영화여정을 생각해보면, 여성적 시선이 두드러질 이 영화는 주인을 잘못 만난 건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처음 고민이 됐다. 하지만 뭔가 새롭고 다른 것을 할 때 신이 날 것 같았다.” 또 느린 템포의 멜로영화는 몰라도, 빠른 호흡의 로맨틱코미디라면 스스로의 취향에도 맞을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이미 로맨틱코미디를 찍은 적이 있다. 93년 출시된 70분짜리 비디오영화 <결혼 만들기>가 그것. 이미연과 김승우가 처음 만난 것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은 애초엔 결혼 가이드 비디오로 기획됐지만 “극영화로 만들어보자”는 김 감독의 제안에 따라 로맨틱코미디로 변신했으니 그로선 이 장르가 낯설지만은 않은 셈이다.

김 감독으로 하여금 이 영화에 손을 대게 한 첫째 요소는 시나리오였다. 우선 인물들이 모두 “뭔가 모자란 인간들”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자신감도 모자란, 이 주눅든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여기에 ‘<무사> 후유증’도 한몫 했다. “<무사>의 후반부처럼 비장하고 무거운 장면을 찍을 땐, 배우나 감독이나 스탭 모두 비장하고 무거워져 힘들었다.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찍을 것 같다.”

“김성수 스타일은 없다. <영어 완전정복> 스타일만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엔 스텝프린팅, 고속·저속 촬영, 엄청난 컷 수 등 현란한 테크닉으로 대별되는 그의 스타일이 두드러지지 않을 것 같다. 코미디는 인물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밋밋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주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 등에선 ‘울림있는 테크닉’을 사용할 계획. 플래시애니메이션, 3D애니메이션, 말풍선 등 다양한 시각적인 장치를 활용할 생각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애물 중 하나는 “김성수는 여성 캐릭터를 이해 못하고, 피한다”는 주위의 평가다. 때문에 그는 아내로부터 여성의 내면에 관해 열심히 ‘사사’받고 있다. “‘김성수가 변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떡할 거냐고 외려 ‘변하는 김성수’가 되길 갈망한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브리짓 존스+아멜리에 어디 있소?

예정대로 3월에 크랭크인하려면 캐스팅이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아직 구체적인 캐스팅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관건은 영주 역할을 맡을 여배우다. 겉보기엔 뚱하며 답답하지만, 내면엔 자유로운 상상력과 꿈을 품고 있는 20대 중반의 여성을 연기해야 한다. 첫눈엔 매력없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서서히 매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르네 젤위거를, 내면에 귀여운 상상의 세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선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를 떠올려야 하는 탓에 신인급 보다는 영화경력이 있는 연기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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