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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올드 보이>
2003-01-03

나는 누구인가,나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인가

오래 전 박찬욱 감독이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봉 감독은 일본만화 <올드 보이>가 재밌어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올드 보이>를 재밌게 읽었다. 얼마 지나 박 감독이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와요>를 영화로 만들려고 알아봤더니, 며칠 전에 봉 감독이 판권을 사갔간다(<날 보러와요>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다). “이럴 수가!” 조금 더 지나 박 감독에게 <올드 보이>를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복수는 나의 것>을 마친 뒤였다. “복수할 기회다!”

멀쩡한 20대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딘지 모를 건물 한구석의 4평 남짓한 밀실에 갇힌다. 조직폭력배가 의뢰인이 원하는 기간만큼 사람을 잡아다 가둬놓고 징역살이를 시키는 것이다. 남자는 의뢰인이 누군지, 왜 그러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게 10년을 갇혀 있다가 마취된 상태에서 공원에 버려진다.‘출소’한 남자는 복수를 다짐하며 의뢰인을 찾아 나선다. 의뢰인쪽에서도 남자를 놔두지 않고 생사를 건 게임을 걸어온다. 영화는 여기까지의 틀거리를 만화에서 빌려온다. 그러나 의뢰인이 남자에게 갖는 원한의 정체, 의뢰인과 남자의 관계, 캐릭터의 특징, 세부 디테일과 대사가 모두 바뀐다.

박 감독이 이 만화에 매료된 건, 미스터리스릴러에 더할 나위없이 적합하면서도 사람에 대해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설정이었다. “주인공이 영문을 모른 채 갇히니까 누가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는지 미치도록 궁금해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런 상황이면 인생을 돌이켜볼 거다. 인생을 복습하면서 내가 남에게 상처준 일이 있는지, 시시한 것부터 큰 것까지 다 꼽아볼 거다. 그 설정이 좋았다. 그처럼 처절하고 절박한 상태에서 회고하고 반성할 기회가 인생에 잘 주어지지 않는데, 타의에 의해 생긴 거니까.” 언뜻 보면 <올드 보이>는 <복수는 나의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차갑다. 이런 식의 대립에 타협이나 절충의 여지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박 감독은 <복수…>와는 다를 것임을 강조했다. “나는 <복수…>가 유머러스한 영화라고 말해놓고도 완성한 뒤 처음 봤을 때 너무 냉정해서 부담스웠다. 이번에는 관객이 인물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함께 사건에 부닥치고 해결해나가는 영화를 해보려 한다.”

만화에선 의뢰인의 정체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박 감독은 관객이 엉뚱하다고 느낄 정도로 의뢰인의 정체를 빨리 폭로할 생각이다. “‘후더닛’이라는 말처럼 대개의 스릴러는 범인이 누구냐를 마지막에 밝히지만, 이 영화에선 ‘왜’를 의문의 핵심으로 가져가면서 마지막에 충격적인 반전을 줄 거다.” 시점을 의뢰인쪽으로 바꿔놓고 보면 ‘왜’의 문제, 즉 원한의 정체는 매우 중요해진다. 다른 사람을 10년간 가둬놓게 하고, 그뒤에도 게임을 걸어오는 집요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만화는 그 의뢰인이 어릴 때 겪은 상처에서 해답을 찾지만, 박 감독은 좀더 넓게 보고 있는 듯했다. “그 의뢰인이 만화처럼 남자의 동창일 수도 있지만, 전우일 수도 있고 직장동료일 수도 있다.” 스타일은 고전적인 필름누아르에 가깝게 가되, 자주와 보랏빛 위주의 강렬한 색상을 선보일 계획이다. 2003년 4∼5월 크랭크인, 가을 개봉이 목표다. 글 임범 isman@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최민식, 뜨거운 배우

“<복수…>는 온도가 낮지만 <올드 보이>는 높을 거다. 그래서 배우도 냉혈동물 송강호에서 뜨거운 최민식으로 간다.” <올드 보이>는 <복수…>처럼 “배우를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밀착해서 감정의 격렬함을 세세하게 중계”할 예정이다. 영화에서 최민식은 오래 갇혀 있으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박 감독은 그에게 “강재로 등장해서 박무영으로 퇴장”할 거라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최민식의 애인이 돼 그를 돕는 20대 초반 여자 역은 오디션을 통해 뽑을 방침. “심사위원들을 배우로 구성하고, 감독 중에는 ‘소녀에 일가견이 있는’(<장화 홍련>의 소녀배우들을 뽑았다는 점에서) 김지운을 참가시키려고 한다.” 악역, 즉 의뢰인 역은 스타로 할지 덜 알려졌어도 연기력이 있는 배우로 갈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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