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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숨은 일꾼들 [2]
2003-01-04

우리,영화판 밖에서 대박을 꿈꾼답니다.

빨간날이 더 바빠!

크리스마스 휴일에도 그는 쉬지 않는다. 촬영은 없지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 신인배우들의 입성을 위해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일정을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취재원들이 대부분 경쟁 업체에 있는 동료들인 탓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지만 배우들의 든든한 지렛대 역할을 하려면 필수적인 일이라고.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매니저 야 이눔아, 대학 보내놨더니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여!” 박충민(27)씨의 갑작스런 상경 선언에 부모는 가슴을 쳤다. 갖은 협박과 회유가 연일 이어졌다. 그렇다고 박씨가 서울행을 포기할 리 없었다. 정보통신학과 졸업을 앞둔 99년 가을의 일이었다. 부모 입장에선 돌출행동이었겠지만, 유년 시절부터서 몰래 쌓아온 스타에 대한 선망은 당시 그를 주저없이 매니저의 길로 들어서게끔 만들었다. 상경한 뒤 곧바로 선배의 추천으로 들어간 매니지먼트사에서,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임은경을 ‘그림자 수비’하라는 것. 임은경의 신상이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안 되는 탓에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어도 따라붙어야 했다. “놀기 좋아하는 나이인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으니 본인이나 저나 힘들었죠.” 전날 사전답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울 지리가 익숙해질 무렵, 그는 “송강호씨가 매니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강호 형님의 골수 팬이었던” 그가 전담 서포터 자리를 단번에 꿰찬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YMCA야구단>의 엔딩 크레딧에 오른 이름 석자를 확인한 순간,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는 그는 요즘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매니저라면 모름지기 “생짜 신인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게 마련.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는 요즘 업그레이드된 프로그램으로 현장수련도 겸하고 있다. 차 안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대신 촬영장에서 모니터를 훔쳐보며 감독의 의중을 추측하거나 짬이 날 때면 시나리오를 들춰가며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회사 차려서 오너가 되기보다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는 선배로 남았으면 한다”는 게 그가 바라는 10년 뒤 모습.

원래 이 직업은 “소리소문없이 가는 게 유리하다”고 슬며시 단서를 달면서도, 안용진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친절한 대답들을 풀어놓는다. “원래는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직업이 성격을 만들어” 이제는 활달함이 몸에 밴 그는, <포레스트 검프>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사랑하는 ‘낭만 청년’에서 지금은 “하루에 두개의 휴대폰 배터리를 다 써도 모자랄 정도”의 바쁜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하지만 서른여섯의 이 ‘총각’은 여전히 꿈을 꾼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그런 그를 “몽송”(꿈꾸는 소나무)이라고 부른단다. 벌이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이 직업에 뛰어들었고, 고등학교 친구인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딩>을 계기로 본격적인 영화 관련 보험처리를 맡게 되었다(그는 영화 <오, 꿈의 나라>에 단역으로 출연도 했다고 한다). 기자재와 관련한 동산 처리는 물론, 배우들의 사고처리까지도 도맡아하고 있는 안용진씨는, 지금도 <선생, 김봉두> <천년호> <실미도> <태극기> 등의 영화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영화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이 직업을 해야 한다”고 다부지게 소신을 밝히는 그는 공허한 의지가 아니라는 듯, 건설적인 제안도 함께 내놓는다. 할리우드에서 시행되고 있는 “영상물 제작 종합 보험(제작비에 보험료가 포함되는)”이 빨리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

안용진씨는 그가 일을 맡으면 “부적을 지닌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들이 자신을 믿는다고 당당하게 홍보도 할 줄 안다. 아마도 그 비결은 고생하는 스탭들을 위해 “빵집 한쪽에 있는 모든 빵을 사들고 촬영장을 찾는” 자상함과 인원이 모자랄 땐 조명기도 같이 붙잡는다는 참여성, 그리고 자기 업무가 아니더라도 연락이 오면 항상 신경을 써준다는 인간적인 ‘고객관리’일 것이다.글 정한석 mapping@hani.co.kr사진 정진환 ung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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