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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풂의 지고한 쾌락
2003-01-08

성석제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난 세기 하고도 80년대의 마지막 성탄 전야에 나는 서울의 어느 수도원 안의 성당에 서 있었다. 성당 천장은 일반 사무실 비슷하게 낮았고 의자도 최대 100 명쯤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도 200, 300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내 앞, 뒤, 옆에 서서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센터에 기타 두대를 기부한 적이 있었다. 청소년센터를 맡아 운영하는 어느 신부에게 개인적으로 무슨 신세를 져서 그렇게 된 것일 뿐, 그 당시의 나는 청소년이나 기타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물며 청소년센터에 있는 청소년들의 반이 가출 청소년이고 나머지 반은 가출할 집조차 없는 비가출 청소년이라는 것, 또 그들이 목공이나 선반 같은 기술을 배워 자립할 때까지 아무런 조건없이 숙식을 제공하고 생활에 도움을 주는 수도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저 오만원짜리 기타를 두대, 신부가 “정 선물을 하고 싶으면 우리 애들 가지고 놀게 기타나 사오라”고 말한 대로 기기부했고 그에 따라 마지못해 성탄 자정 미사에 온 것이었다.

자정 미사가 열리기 전 이미 잔치는 시작되었다. 어디서나 흔한 장기 자랑에 춤과 노래 자랑이 이어졌고 시낭송도 있었던 것 같다. 가장 흥성한 무대는 청소년들이 대거 참가한 연극이었다. 연극에서 예수는 이천년 전 유대의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고 가리봉동인가 난곡인가 하는 한국의 빈민촌에서 태어났고 당연히 이 땅에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니 결말은 뻔했다. 우리 각자 모두가 예수처럼 내 원수를 사랑하고 왼쪽 뺨을 치면 오른쪽 뺨을 내밀고 마음이 가난하여 하늘나라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뻔한 이야기가 한결같이 비쩍 마르고 정에 굶주려 보이는, 누가 뺨을 치면 오른쪽이고 왼쪽이고 얻어터질 수밖에 없어 보이는 청소년들을 통해 나오니 뻔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었다. 뭐랄까, 가난한 과부의 동전 한닢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어떤 것을 공짜로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갈수록 불편해졌고 동전이, 과부가 애처럽고 어느 결에 미워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매월 일정한 액수를 기부하는 사람들이었고 어떤 사람은 노력봉사로 후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청소년센터의 청소년과 자매, 형제, 부모의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니, 누나, 동생, 형, 아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대사를 욀 때는 안절부절하다가 무사히 끝나면 그때마다 열렬히 환호하고 손뼉을 쳤다. 특히 아기 예수가 탄생하는 순간에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동방박사요, 들판의 양치기가 된 듯 ‘어서 가 경배하자’고 손잡고 노래했다.

공연이 끝나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로 이루어진 중창단이 미사 내내 보이 소프라노의 음색으로 성가를 노래했다. 그 맑고 힘찬 목소리의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강렬한 캐럴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아직도 그같이 폐부를 찌르는 성가를 들은 적이 없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이 캄캄하고 추운 한밤중에 우리에게 내려온 헐벗은 예수’ 같은 가사 하나하나가 모두 실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떡과 선물을 나누었다. 어느 한쪽이 주고 한쪽은 받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안에서 정성껏 준비한 목공 인형, 밖에서 떠온 털옷이 오고 갔다. 그들 옆에서 나는 성의없이 사들고 온 공장제품 기타 두대를 떠올리며 혼자 어정거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목이 잔뜩 메여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나는 어느 친구에게 들었다. “누구에겐가 힘써 베푸는 일(布施)은 우리의 뇌에 다른 것과 비교가 안 되는 지고한 쾌락을 안겨준다. 그러므로 베풀도록 해주는 존재의 발에 입을 맞추며 경배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