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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는 왜?’
2001-05-17

비디오카페 75

살다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 굉장히 ‘심오한’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나의 경우, 대여점에 매일 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이는 무엇 때문에 매일 영화를 보는 걸까?’하는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주말이나 공휴일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데다 최대한 신중하게 재미있는 영화를 고른다. 그러나 내가 궁금해하는 이 사람들은 평균 다섯명 정도에 이르는데, 대개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대여점에 들러 재미있건 없건 출시되는 모든 영화들을 본다.

그들의 특징은 미개봉작과 B급영화들을 절대 천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영화를 피해가는 안목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해명되지 않은 중독성 대여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이른바 ‘B급영화들’의 공급이 끊이지 않는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출시되는 모든 영화들을 다 보는 고객들 중에 위의 특징과 약간 다른 분이 한분 계신데, 바로 정형외과 의사인 이희대 선생님이다. 우리 대여점 바로 앞에 사시는 선생님은 매일 하루 한편 이상씩 빌리는데다 한국 에로를 제외하고 출시되는 모든 영화를 다 보신다. 모든 영화를 다 보기 때문에 내가 적절하게 도움을 받는 모니터 요원이기도 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얼큰하게 취하셔서 하시는 말씀. “주현씨, 내 원래 꿈이 영화감독인데 말이야. 나랑 동갑인 리안 감독이 <와호장룡>을 만들었잖아….” 더 놀라운 건 아직도 그 선생님이 그 꿈을 접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매일 영화를 보는 이유는 감독이라는 또다른 꿈을 꾸기 때문일까? 이주현|영화마을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