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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망아지 럭키!
2001-01-19

<자유로의 질주>(Running Free)

1999년, 감독 세르게이 보드로프 출연 체이스 무어 장르 드라마(컬럼비아) (허허실실)

동물들 세계에 존재하는 장엄한 계급투쟁과 사랑에 관한 서사극? 좀 이상하긴 하지만,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의 <자유로의 질주>의 주제를 요약하라면 뭐, 대충 그런 것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14년. 아프리카의 한 광산으로 가는 독일국적의 화물선박에서 럭키라는 망아지가 태어난다. 그러나 선박이 해안에 도착하는 순간, 그 혼란스러움과 인간들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럭키는 엄마 말과 이별하게 된다. 그를 구원해주는 이는 광산 근처의 농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년 리차드. 소년은 럭키를 주인의 농장으로 데려가 보살피지만, 농장주와 그의 종마의 횡포에 이들은 시련을 겪는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사람들이 농장을 버리고 피난가 버리자 혼자 버려진 망아지 럭키는 다른 말들에게 더욱 멸시를 받는다. 결국 럭키는 자신이 희망하는 파라다이스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의 사막으로 나서게 되는데.

이 영화가 조금 황당한 것은 영화의 내레이션과 지배적인 시점을 제공하는 이가 망아지 럭키라는 점이다. 대개 소년과 동물의 우정에 관한 영화들이 소년의 시점에서 진행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기껏해야 애니메이션 정도에서나 동물이 말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말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는 사람이라곤 몇 안 되는 소수만이 등장할 뿐이고 나머지는 꽤 그럴듯한 연기를 하는 말들이 등장해 인간세계를 한껏 은유한다. 주인의 총애를 받는, 인간세계로치면 지배계급의 말들이 존재하고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는 노동계급의 말들이 있다. 그리곤 지배계급에 해당하는 말들이 행하는 폭력과 우매함에 저항하는 럭키의 투쟁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를 이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물보호와 애정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동물이 바라본 인간사회의 모순과 폭력에 관한 영화이다. 그런 점에서 새롭긴 하지만, 그래도 풍자를 할라치면 좀 냉철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대충 짜맞추는 해피엔딩과 도식적인 선악 구조는 이 영화를 다소 지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각본과 제작은 <베어>를 연출했던 장 자크 아노가 맡았다. 그리고 감독은 러시아 출신의 세르게이 보드로프. 85년의 데뷔작 로 모스크바영화제 은상을 받았으며, 이후 몇편의 영화들을 통해 굵직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은 이다. 우리에게는 96년 연출작 <코카서스의 죄수>로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이 영화 <자유로의 질주>는 감독이 몇년간 체험한 아프리카의 부시맨 공동체의 정서를 살려 연출한 작품으로 독특한 이야기 방식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정지연/ 영화평론가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