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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영화를 보다.
2001-07-13

가끔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들의 꿈 이야기를 듣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디선가 보았던 영화이야기를 내담자들은 자신이 본 마냥 그대로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내담자들의 입을 통해 신의 계시가 내려지는 것 같아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어머니의 애정결핍에 시달린 내담자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따라 긴 통로를 헤치고 어딘가를 들어 가봤더니 그게 바로 냉장고 안이 더란다. 살려달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냉장고문은 열리지 않고, 내담자는 이제 꼼짝없이 얼어 죽었구나 하는 순간 깨어났다고 했다. 자신 때문에 냉장고에 들어가 죽은 아이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이 음식을 거부하던 이야기는 바로 영화 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테마이기도 하다. 이 내담자 역시 불안정한 정서와 음식을 연결시키는 폭식증이 있었다. 결국 음식물이 들어찬 냉장고란 가짜 자궁 혹은 차가운 자궁은 아니었던가?

원형적 무의식을 펼쳐 보이는 공작의 깃털 같은 화려한 꿈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꾸는 꿈은 예상외로 아주 소박한 것일 때가 많다. 나 역시 근 10년간을 시험불안이라던가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나는 이런저런 꿈을 꾸었었다. 나의 은사는 6.25때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는 꿈을 지금도 꾼다고 한다. 심리학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레포트 속에는 자신만 남겨두고 떠나는 부모나 하늘로 날라 가 버린 형제들에 관한 꿈도 있다.

질투, 그리움, 버림받을 것에 관한 두려움.

인간적인 간절한 정서의 잔여물들이 베일을 한 겹 쓰고 의식의 춤을 출 때면, 그리고 스크린에 등장 할 때면, 그러나 그 반사각의 진폭은 커져서 또 한번 사람을 놀래 킨다. 부모 살해나 근친상간의 환타지 영화들은 마치 어지러운 프리즘으로 커졌다 늘어졌다를 반복하는 나 자신이라는 괴물을 보는 것 같지 않던가?

예전과 달리 이제 난 가끔 딴 남자와 결혼해서 울거나, 남편이 도망가는 꿈을 꾸다 깬다. 그런 날 새벽에는 잠자는 남편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다시 잠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번에는 잠을 자던 남편이 갑자기 부스스 일어나 이러는 것이 아닌가. “저 말야, 나 되게 나쁜 꿈을 꿨어. 있지 내가 딴 여자한테 가버린 후 이제는 당신에게 돌아가고 싶어도 당신이 끝끝내 마음을 안 돌려서 되게 후회하는 꿈이었어.” 그날 나는 남편을 꼭 안아 주었다.

환상, 꿈, 그리고 영화. 이 일렬로 늘어선 현실을 감싸안은 ’없음’의 그물코를 벗어나는 날, 난 어쩌면 죽음이라는 영원속으로 스르륵 들어가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