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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악을 사랑하게 된 까닭은?
2001-07-15

나는 위선보다 위악이 싫다. 아니, 위선은 그닥 싫지 않다. 위선이란 게 내 참모습보다 좀더 착하게 보이고픈 마음이라면, 그것은 최소한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다. 이것은 ‘삶’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며 어떻게든 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싶어하는 안간힘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위악은 좀 건방져 보인다. 내 진짜 모습보다 날 더 나쁘게 보아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 그것은 니네가 날 어떻게 보던 난 자신있다, 이런 식의 거만함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영화도 비록 유치할 지언정 착한 척하는 영화가 낫다. 괜히 쿨한 척 못되게 구는 영화, 그럼으로써 세상이 얼마나 정 떨어지는 곳인지를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영화, 아니,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 지를 보여주겠다는 명분하에 각종 심난한 사회상을 과장하여 보여주는 영화는 안일해 보이기까지 하다.

<시리즈 7>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는 그렇고 그런 위악쟁이 영화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작위로 경쟁자들을 뽑아서 총을 쥐어주고는 서로에 대한 사냥으로 몰고간 끝에 최후의 생존자가 다음 번 시리즈에 오르게 된다는 이 말도 안되는 설정은 몹시 거슬렸다. 그럼으로써 소위 극한 생존경쟁으로 치닫는 현대인을 비판하겠다는 건가? 맹목적인 공격심을 고발하겠다는 건가? 아무거나 상품으로 만들어 구경시키며 돈버는 미디어 세태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건가? 게다가 요즘 이런 영화들이 동서를 막론하고 인기라지. 에이, 정말 우스운 것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난 느낌은 선입견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다. 물론 잔혹하지만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고(나는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사람 죽이는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닌데도), 때론 살인자들에게 연민을 느꼈으며(나는 기행을 벌이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낄 만한 말랑말랑한 감수성의 소유자가 더 이상 아닌데도), 어떤 시퀀스에서는(특히 그 뮤직비디오!) 옛추억이 떠오르며 센티멘털해지기까지 했다. 뻔할뻔자의 우스운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영화는 고비마다 한번도 내 예상과 부합하지 않는 참신한 반전들을 보여주었고, 여러 가지 장르와 캐릭터가 한데 뒤섞여,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내가 왜이리 재미있게 봤는지 갈피가 잘 안잡힐만큼 복합적이고 새로운 영화였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작품이라 이 정도밖에 얘기 못하는 게 답답하다. 일단 보시길. 정말이지, ‘부천의 영화’다운 영화였다.

오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