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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씨네콜라주] 포이즌 배리모어 사건

우리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은하간 범죄 인도 협정’이 체결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이로 인해 나와 스컬리 요원은 FBI가 수십년간 좇던 문제의 범인을 체포할 수 있게 되었다. 범인의 심문은 극비리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름이 공표되었을 때 지구인들이 받게 될 엄청난 충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문 막바지에 피해 당사자로부터 탄원서가 날아왔고, 범인을 은하계 바깥으로 추방하는 것으로 수사는 종결되었다. 이 심문 기록은 ‘협정’에 의해 24시간 내에 자동소각될 것이다.

멀더: 당신은 지금까지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중 가장 선량한 종족으로 알려져왔다.

E.T: 나는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선하게 보든지 그러지 않든지 하는 것은 당신들의 판단일 뿐이다.

멀더: 스스로 기만적이라 여기지 않았나? 그렇게 착한 눈빛으로, 그 어린 소녀의 몸 속에 끔찍스런 독소를 주입하다니.

E.T: 운이 없었을 뿐이다. 아니 바보처럼 나의 꾐에 넘어갔던 그녀의 우둔함 때문이다.

멀더: 거티, 본명은 드루 배리모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가 10살도 되기 전에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10대의 절반도 지나기 전에 자살을 기도하게 되었다. 모두 당신을 만난 직후의 일이다.

E.T: 그녀가 14살에 쓴 자서전, <길 잃은 작은 소녀(Little Girl Lost)>는 우리 행성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9살에 처음 술을 마셨고, 10살에 마리화나를 피웠고, 12살에 코카인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문구는 너무나 유명하다. 사실 나는 그것으로 인해 영웅 대접을 받기까지 했다.

멀더: 그러나 지구인의 의지는 당신들이 예측했던 것만큼 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E.T: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었다. 특히 우리의 특제 비만 효소가 그녀의 가슴을 34인치 더블 D컵으로 만들었을 때, 나는 환호를 질렀다.

멀더: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군. 가슴 축소 수술이 그 운명을 뒤바꾸었다. 그녀는 훌륭하게 베벌리 힐즈로 돌아왔다.

E.T: 그래서 돌아온 그녀의 자리는 중년의 남자를 유혹하는 ‘포이즌 아이비’.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멀더: 우리도 그때 주목하고 있었다. 어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마릴린 먼로’와 ‘로리타’임을 서슴없이 말했을 때, 그녀가 스탠리 큐브릭의 오리지널 <로리타>의 여주인공 수 리온처럼 몰락해가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E.T: 그녀는 하얗다. <배트맨 포에버>의 슈거처럼. 그래서 달콤하지만 위험하다. 그녀의 아랫도리에 있는 나비 문신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어둠의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찢어진 ‘게스’ 청바지와 <웨딩싱어>의 축복을 받는 순백의 신부. 드루는 분명 두개의 영혼을 지닌 <도플갱어>다.

멀더: 순진하기 때문이겠지.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부잣집 처녀처럼 그녀는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그것은 그녀가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T: 그래서 바보처럼 살인자의 장난 전화에 걸려 들어가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는가? 하하하, 그래 그것이 영광이겠지. 장담하건대 수십년 뒤 사람들은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절대 기억 못할 것이다. 대신 그 끔찍한 <스크림>의 비명만큼은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내지르는 근원적인 절규다.

멀더: 당신의 저주는 거기까지다. 더이상 그녀는 유혹받지 않고, 아름다운 ‘신데렐라’로 살아가고 있다.

E.T: 더이상 알코올중독자는 아니지. 그러나 “만약 밥먹을 때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는 자신있는 ‘말보로 걸’이긴 하지. 그리고 자기 어머니를 49살의 나이에 <플레이보이>에 등장시킬 만큼의 효녀이기도 하고.

등장인물

드루 배리모어: 스티븐 스필버그의 <E.T>로 세계인의 눈앞에 나타난 깜찍한 소녀. 그러나 끔찍한 타락의 10대 시절을 보냈고, 힘겹게 재기해 다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때 유혹의 ‘로리타’였지만, 지금은 로맨스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 되어 있다. 과연 언제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