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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칼리지 에미상 수상한 예비감독 이철하
사진 정진환황혜림 2000-03-28

내일은 오늘은 충무로!

미국 TV프로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국내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올해로 52회를 맞는 에미상은 미국 TV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다. 앞에 ‘컬리지’가 더 붙은 ‘컬리지 TV상’은 말하자면 대학생 작품의 에미상. 에미상을 주관하는 TV예술과학협회(Academy of Television Arts&Sciences)가 전국 대학생들의 작품을 공모해서 7개 부문의 수상작을 골라낸다. “오늘의 대학생 TV프로듀서와 감독들은 내일의 할리우드 인력”이라는 컬리지 에미상 홈페이지의 글귀처럼, 새로운 재원발굴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 셈이다. 바다 건너 서울과는 멀어도 한참 먼 것 같은 이 생소한 무대에, 이철하씨(30)는 두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뮤직드라마 부문에서 작년에는 <The Confessional>로 1등상을, 올해는 <O>로 3등상을 차지해 연속 2년 수상을 기록한 것이다. 21회째를 맞은 올해는, 119개 대학에서 281편이 출품됐고, 157명의 ATAS위원이 심사를 맡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오브아트칼리지 영화연출 석사과정을 휴학중인 이철하씨는 꾸준히 단편작업을 해 왔다. 현재는 작년에 미국을 방문한 이현승 감독과 만난 인연으로 <시월애>의 조감독 제안을 받아 일단 서울로 돌아온 상태. 직접 연출한 4편을 비롯해 꾸준히 16mm 단편영화를 만들고, 조감독을 하는 지금은 영화로 향하는 길이 당연해졌지만 처음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그저 막연함뿐이었다. 연출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졸업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광고기획사 코래드에 4년간 PD로 일하다가 유학을 결정한 게 97년 초. IMF 직전의 호경기여서 스카우트 기회도 좋다며 주위의 만류도 많았지만, 일단 동생이 살고 있는 보스턴으로 날아갔다. 연출을 할 수 있는 실기 위주의 학교를 찾다가 아카데미오브아트칼리지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꼭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길이 뚜렷해진 것은 직접 필름을 만지면서부터. IMF 때문에 햄버거 하나에 1만5천원씩 하는 통에 종종 굶어가면서, 시나리오부터 붐마이크 들고 카메라 돌리는 것까지 혼자 해낸 첫 작품 <칫솔>을 만들었다. 한 남자와 그를 지나쳐가는 연인들에 대한 기억을 칫솔의 시점에서 담은 이 뮤지컬코미디는, 여성처럼 의인화된 칫솔이 남자를 위해 노래부르는 등 기발한 발상 덕분에 4회 10만원비디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두 번째로 담배 피우는 중학생이야기인 <틴 스모커>를 찍었고, 그뒤 같은 학교로 유학온 채일진씨와 고영준씨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이철하씨가 연출, 채일진씨가 프로듀서, 고영준씨가 촬영을 맡아 공동작업한 첫 산물이 바로 지난해 수상작인 <The Confessional>. 전람회의 <고해소에서>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바닷가에서 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는 남자의 기억과 현재를 오가는 이 뮤직비디오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돋보이는 흑백화면이 인상적이다. 음악에서 시각이미지를 끌어내는 수업 과정중에 만들었다는 <O>(悟)도 그런 의미의 팀프로젝트. 욕조에 잠겨 있던 남자가 거리를 달리고, 건물 옥상에서 삭발한 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는 이미지들은 한 남자의 각성과정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다. 없는 돈에 구한 낡은 집을 종종 무대로 삼고, 학교에서 촬영장비를 빌리고, 학생들끼리 ‘품앗이’해서 서로의 프로젝트를 돕는 등 저예산이지만 많은 작품을 경험한 유학생활은 머리에 있던 연출의 개념을 얼마쯤 몸으로 옮겨놓았다. “영화가 기본이지만, 영화만 하겠다는 고정관념은 갖지 않으려 한다”는 이철하씨는 광고와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겠다는 생각. 충무로 데뷔를 서두르기보다 충분한 경험을 쌓고, “<시네마 천국>이나 <제8요일>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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