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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골의 밤은 깊어
2001-07-16

기차여행의 백미가 밤차여행이듯 심야상영은 영화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묘미. 자정에 막을 올려 새벽 무렵에야 막을 내리는 심야의 여정은 관객에겐 마치 영화에 대한 애정도를 심사하는 시험과 같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이유를 갖고 참여한 다양한 관객들만큼이나 깊은 밤 스크린을 수놓는 영화들의 색깔 역시 다양하다 못해 현란할 지경. ‘부천의 깊은 밤’, 그 두 번째 이야기는 해변의 살인파티에서 시작, 저예산 독립영화 감독의 삶과 스치듯 이어지는 두 남녀의 만남을 잠깐 구경시킨 뒤 떠들썩한 홍콩 뒷골목에다 짐을 부릴 예정이었다. 천둥와 비바람의 협공에도 불구, 오히려 첫 날보다 더 많은 관객이 몰렸다는 관계자의 말처럼 1, 2층 좌석은 빈자리 없이 빼곡이 메워졌다. 첫 번째 상영작 <싸이코 비치 파티>가 상영되는 동안 객석은 말 그대로 웃음의 도가니. 이중자아를 가진 여주인공의 모습은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15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배가 고픈 관객들, 슬슬 배를 채우러 매점을 향한다. 두 번째 영화 <인디펜던트>가 끝나고 이어진 깜짝 이벤트. 객석 밑에 문제지가 숨겨진, 선택받은 사람만이 대답할 권한이 있다. <인디펜던트>의 주인공 이름은? 선물은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로고가 찍힌 티셔츠와 모자, 포스터. 지금까지 2급을 자처하는 황당한 영화를 관람했으니 프랑스에서 날아온 담담한 이야기를 들어볼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시간이다. 나비 효과이론에 기초하여 특정 주인공 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간의 일상이 서로의 작은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는 잔잔한 이야기에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려온다. 일상을 역행하고자 하는 영화광들의 의지가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안타깝지만 코믹한 풍경.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지만 아직 갈 시간이 아니다. 마지막 영화 <강호고급>까지 보고가야 진정한 심야 관객. 총부림과 액션이 난무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코믹함에 환타지까지 두루 갖춘 이 ‘잡종’ 영화는 마지막 남은 관객들의 의지를 마음껏 유린한 뒤 드디어 엔딩 크레딧을 올렸다.

심지현, 손은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