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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떨림, <정사>

올 4월28일부터 5월4일까지 일주일 동안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채 두달도 안 남았다. 영화제 준비하랴 절반은 영화학교인 영상원 원장노릇도 같이 해야 하니 몸을 두쪽으로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씨네21> 기자로부터 ‘내 인생의 영화’란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서 응하기는 했지만 난감하다. 도대체 무슨 영화에 대해 써야 하지. 단순히 기억에 남는 영화라든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영화를 이야기하면 될까. 그러나 과연 영화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단 말인가.

영화는 젊음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 관객은 젊다. 젊음은 영화를 열망하고 영화는 젊음을 매혹시키며 그 매혹을 바탕으로 살아나간다. 영화가 갖는 ‘일과성’도 영화와 젊음과의 친연성을 보여주는 한 측면이라 볼 수 있다. 요즈음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아무 때나 원할 때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제때에’ 보아야 한다. 계절이 한번 지나가듯 그 계절과 함께 영화는 극장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영화가 이렇게 한번 스치고 지날 때 사람들의 삶과 영화와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영화에도 이른바 고전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런 고전적 영화는 두고두고 보아도 여전히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이는 순수한 감동이라기보다는 지적인 만족에 더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관람은 연애와도 같은 것이어서 반복해 보았을 때는 최초의 만남에서와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영화가 주는 감동은 신선한 것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곧 퇴색하는 것 같다. 오로지 그 신선함은 영화를 본 사람의 기억 속에만 살아 있다. 그래서 옛날에 보고 감격했던 영화를 다시 보면 마치 머릿속에만 그리던 옛 애인을 오랜만에 만나 실망하듯 실망하는 수가 많다. 보는 사람이 변한 것인가 영화가 퇴색한 것인가.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은 그래서 ‘내 젊음의 영화’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된다. 나이를 먹어서 영화가 내게 이미 과거형이 된 것인가. 젊은 나를 매혹시켰던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영화는 기억과 무슨 관계를 갖고 있을까. 영화의 회상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영화에 관련된 일로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영화는 챙기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심지어 극장에 가서 영화 볼 시간도 내기 힘들지 않은가. 그런데 ‘내 젊음의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니.

어쨌든 기억 속에서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안토니오니의 <정사>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63년 대학에 입학하던 해 봄, 19살, 성인이 되었다고 처음 자각할 때, 황폐하고 빈곤한 대학을 보고 절망하고 있을 무렵이다. 중앙극장에서 우연히 본 이 영화는 매우 놀라웠다.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받은 느낌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 전체가 무척 세련돼 보였다. 영화주제가도 모니카 비티도 멋있었다. 스크린마저 특별한 광채로 하얗게 빛나는 것 같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영화에 대해 부러운 감정마저 느꼈던 것 같다. 마치 영화 자체가 질투심이 불러일으킬 정도로 눈부시게 멋있는 사람인 양. 문자 그대로 자신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초의 떨림과 같은 것이었다.

그 매혹은 아주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전에 다른 영화에서 맛보았던 멜로적 감동이나 액션의 박진감, 또는 장면의 현란함과는 다른 성격의 독특한 감각과 정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도취되는 느낌. 매혹과 그 매혹을 차단하는 브레히트적 소외효과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에는 그런 단어나 개념을 전혀 몰랐지만 이른바 영화의 모더니티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했던 것일까.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영화는 분명 새로운 영화, 아니 영화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대학초년생 특유의 스노비즘에 휩쓸려 감동을 과장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 안토니오니라는 이름도 몰랐고 서구에서 특별하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라는 사실도 몰랐다.

연애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여자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춘기를 완전하게 벗어나지도 못한 젊은이가 정사의 허망함을 통해 사람 사이의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영화에 전율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삶의 건조함과 황량함이 스크린 위에서 멋있고 세련된 형태로 보여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이율배반적이다. 자기기만이 끼어 들어갔던 것일까.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달리 어찌할 바도 모르는 젊음의 혼동이 영화의 스크린에 투사되었던 것인가. 흑백 장면들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그저 막연하게 감탄했던 것인가.

그뒤 한참 동안 이 영화의 유명한 주제가를 다방이나 라디오에서 듣게 되면 그 최초의 떨림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은밀하게 간직하려 했다. 왠지 부끄러운 것 같아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 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한두어번 다시 보았고 각 장면이나 스토리도 잘 기억나지만 그 최초의 떨림을 다시 경험한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그 느낌을 쑥스럽다고 스스로 억압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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