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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적인 너무나 ‘재즈’적인, 스파이크 리의 <모 베터 블루스>
2000-03-14

세기 초 뉴올리언스에서 싹튼 재즈음악의 역사는 (‘위대한’) 흑인 뮤지션들이 일구어놓은 역사라고 말해도 아마 무방할 듯싶다. 그렇다고 한다면 일종의 분리주의적인 문화적 인종주의를 표방했던 스파이크 리가 재즈의 그런 ‘환경’에 관심을 가진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일 테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 빌 리는 실제로 저명한 재즈 베이시스트가 아니던가. 스파이크 리는 <라운드 미드나잇>이나 <버드>처럼 흑인 재즈 뮤지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백인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이 영 못마땅했다. 리가 보기에 이런 영화들이란 위대한 흑인 예술가들에 대해 어떤 진실을 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들만을 반복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식의 비판적인 반응이 리로 하여금 그의 네 번째 영화를 흑인 재즈 뮤지션의 삶으로 향하게 재촉했던 것이다. <모 베터 블루스>는 가공(架空)의 트럼펫 주자인 블릭 길리엄의 삶과 음악의 이중주를 들려주는 영화. 블릭은 현재 제법 성공을 거둔 재즈그룹의 리더이다. 그의 고민거리 가운데 꽤 절박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삶에 자리한 두명의 여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세련되고 고혹적인 여인 클라크와 그보다는 덜 매력적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더 건강한 교사 인디고 사이에서 한 사람을 고른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블릭의 또다른 골칫거리는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이며 상습적인 도박꾼인 자이언트.

개봉 당시 <모 베터 블루스>는 지지와 반대를 나누어 가졌는데, 두 경우 모두 그 준거점은 리의 전작 <똑바로 살아라>(1989)였다. 즉 <똑바로 살아라>의 논쟁적인 도발성에 들뜬 감흥을 느꼈던 이들이 <모 베터 블루스>의 누그러뜨린 열정에 시큰둥했다면 전작의 공격성에 부담스러워했던 이들은 오히려 여기서 자제와 성숙의 미덕을 발견했던 것. 그 선호야 어쨌든 전작보다 협소해진 다소 개인적인 캔버스 안에서 뮤지션들에 대한 관습적인 묘사를 거부하면서 그들 삶의 실상에 더욱 접근하려는 것이 <모 베터 블루스>의 중요한 의도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선 담배 연기 자욱한 재즈 카페라든가 또는 마약과 술에 전 채 파멸하는 추락한 천재 예술가 같은 클리셰를 찾아볼 수 없다. 예술적 ‘광기’를 발산하는 천재적 광인 대신 이 영화엔 ‘관계’의 문제로 고민하는 좀더 사실적이고 따라서 인간적인 뮤지션이 자리하고 있다. 흔한 영화 속 천재들과 달리, 주인공 블릭은 음악 외엔 모두 둘째 문제로 치부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내적인 예술혼을 불태우는 인물이 아니며, 음악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소통에 애를 먹고 있는 ‘평범한’ 인물인 것이다. 하긴 이런 설정 역시 삶과 예술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예술가라는 또다른 관습을 따르는 것이긴 하지만. <모 베터 블루스>의 스토리가 할리우드의 전통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그렇다면 재즈의 서정적인 선율을 따라 그야말로 유연하게 흘러가는 어니스트 디커슨의 카메라가 대리만족을 줄 테니까 말이다. 특히 변화하는 색색의 조명 속에 트럼펫을 훑어가는 첫 장면은 대단히 ‘관능적’이다. ‘모 베터’나 ‘재스’(Jass: 재즈의 어원)나 어차피 성교한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이건 매우 재즈적인가?

재즈 뮤지션을 그린 영화들

블루스를 노래하는 영화

최초의 토키 영화로 알려진 작품이 <재즈 싱어>(1927)였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영화와 재즈음악의 결합은 꽤 오랜 역사를 가졌다. 재즈라는 음악 형식이 전파력을 키워갈수록, 그만큼 영화도 재즈의 선율을 빌려왔다. 그리고 화가나 다른 고전음악가의 삶을 다루듯이 자연히 재즈 뮤지션을 다룬 음악 전기 영화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글렌 밀러 스토리>(1954)는 스윙의 전설적인 인물인 글렌 밀러의 삶을 그린 영화. 트럼본의 명수인 그가 자신의 소리를 발견하려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전형적인 미국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을 맡았다. 감독은 심리적 웨스턴의 명장인 앤서니 만. 또다른 스윙의 왕으로 인정받는 베니 굿맨의 삶을 그린 영화가 이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베니 굿맨 스토리>(발렌틴 데이비스 감독, 1955). 스티브 앨런이 클라리넷에 일생을 바친 베니 굿맨을 연기했다.

어느 CF에 나온 관계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블루스의 명곡 <I’m A Fool to Want You>를 부른 가수가 바로 빌리 할리데이. <블루스를 노래하는 여인>(시드니 퓨리 감독, 1972)은 재즈 보컬의 전설인 빌리 할리데이의 삶을 그린 영화다. 가수이자 배우인 다이아나 로스가 주연을 맡았다. 한편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의 <라운드 미드나잇>(1986)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1988)는 모두 흑인 색소폰 주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 테너 색소폰의 거장 덱스터 고든이 주연한 전자가 미국 색소폰 주자와 프랑스 청년 사이의 우정을 그린 영화인 데 반해, 후자는 비밥의 신화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포레스트 휘태커가 그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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