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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보라, 학교가 보인다, 주간단막극 <학교>

<학교> <학교2>의 계보 잇는 새 주간 단막극 <학교>

‘Carpe diem!’(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부모들이 강요한 틀 속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상상력을 거세당한 죽은 시인들에게 그들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일깨워준 키팅 선생의 이 말은 혁명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의 영국고등학교는 흡사 우리의 학교를 보는 듯 하다. 똑같은 타이에 똑같은 양말을 신고 똑같은 크기의 꿈을 강요당하던 아이들. 키팅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품질 좋은 ‘공산품’이 되어 공장에서 출고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학교. 키팅 선생은 없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000년 대한민국의 학교. 키팅 선생은 없다. 그저 “주식만 올라봐라, 내 당장 그만둔다”며 학생들에게 이를 박박가는 선생들과 교복을 가방에 처넣고 원조교제 아저씨의 호출을 기다리는 더이상 소녀가 아닌 학생들이 있다. 누군가는 학교가 무너진다고 하고, 누군가는 교육이 썩었다고 말하며, 누군가는 요즘 애들 정말 골때린다고 말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렇게 ‘학교’는 드라마거리다. 그것도 소재가 무궁무진한 드라마거리다. 그러나 정말 드라마거리에서만 그쳐서는 안될 곳이다.

지난해 2월22일. 으레 ‘어른들 사랑이야기’로 채워지게 마련인 미니시리즈 시간에 ‘원조교제’‘낙태’‘왕따’‘폭력교사’ 등 오늘의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사례를 중심으로 한 <학교>가 방송되었다(이민홍 연출, 김지우 극본). 현란한 핸드헬드(들고찍기) 촬영과 감각적인 편집, 그룹 ‘언타이틀’의 랩을 곁들인 세련된 주제가, 이제는 스타계열에 낀 장혁, 배두나, 안재모 등의 신선한 캐스팅, 그렇게 날이 가는지 모르고 <학교> 16부작은 빠르고 가열차게(?) 끝을 향해 달려갔다. 초반 ‘애들 이야기 가지고 될까’ 하던 우려는 단박에 깨졌고 특히 교사들에 대한 솔직한 접근은 의도된 존경이 아니라 인간적인 믿음으로 이어져 마지막회 ‘신구’ 선생님의 정년퇴직장에서는 자연스레 울음이 터져나왔다.

모름지기 대학생 드라마는 중고생들이 보고 중고생 드라마는 초등학생이 보게 마련이다. 그만큼 그속에 있는 사람들은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잘 안다는 이야기도 된다. 가끔 ‘이유없이’ 방황하던 아이들이 훌륭한 선생님과 따뜻한 가정의 품으로 돌아오는 비현실적 등식이 언제나 성립하고, 말 그대로 학교는 그저 무대이고 학생들은 그저 소재일 뿐이었다. 이런 드라마 속에서 ‘눈높이’ 드라마 <학교>의 선전은 시청자들의 정기를 이어받은 건강한 둘째녀석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학교는 공부하는 데가 아니라 버티는 곳이야

<학교 Ⅱ>(1999년∼2000년)

‘새로운 피’ 한준서 PD와 이향희, 진수완 작가 외에도 첫 번째 <학교>의 제작을 맏았던 박찬홍 PD와 김지우 작가 등 ‘명관’인 ‘구관’들이 합세한 <학교2>는 지난해 5월22일 시기상으로는 조금 어정쩡하게 ‘개학’을 맞았다.

<학교>가 미니시리즈의 성격답게 임팩트가 있는 사회적 소재를 많이 다루었다면 <학교2>는 주간단막극으로 옮겨오면서 매회 다른 시추에이션 속에 캐릭터 중심의 롤 플레이 형식을 보여준다. 캐릭터를 중심에 놓다보니 심리적인 묘사와 마음의 소리가 전편에 비해 두드러졌다. 여전히 ‘일진회’가 나오고 그속의 ‘짱’이 나오지만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은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그 아이가 방황하는 이유와 마음의 갈등에 대한 세심한 묘사에 좀더 치중한다. 성적이 나빠서 ‘은따’인 유미는 “혹시 지금 이 현실이 영화고 난 다른 아이들을 위한 엑스트라나 풍경이 아닐까? 난 교실 뒤에 놓인 주전자고, 창가에 매달린 커튼이고, 없어지거나 조금 위치가 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풍경 같아”라며 슬퍼한다. 외로운 천재 신화는 담임인 제현에게 “학교라는 데가 사람들 가슴속에 상처 하나씩 안겨주고 떠나게 만드는 데 뭐 있잖아요”라며 자퇴한 친구를 그리워한다. 반항아 세진의 눈엔 “학굔 공부하는 데가 아니라 버티는 곳이야”이고 ‘유리병 속에 갇힌 나비’ 혜원은 ‘일진짱’에서 벗어나기 위해 흠뻑 두들겨맞은 뒤 ‘어쩌면 이건 끝이 아니고 또다른 시작일지도 몰라. 새로운 시작에서는 다시는 길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며 스스로 구제한 삶에 대해 읊조린다. 모범생 혹은 날라리 등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각기 다른 주관식의 대답을 가진 아이들의 내면. 그것이 <학교2>의 새로운 화두였고 화법이였다.

당초 10월이 이별인 줄 알았던 <학교2>는 KBS의 공익적 사명감의 생명연장 주사를 맞고 KBS2 토요일 방송을 KBS1 일요일로 옮기면서 ‘학교2-2’를 시작한다. 연출진도 바뀌었고 죽 학교를 책임지던 김지우 작가가 ‘자퇴’하고 김윤영 작가가 ‘전학’왔다. 이창훈이 빠지고 새 담임 조재현이 합류했고 몇몇 아이들도 물갈이됐다. 그리고 올해 2월 ‘교무실 습격사건’을 마친 아이들은 3학년 교실로 모두 떠나갔다.

새 학생, 새 선생 그리고 새로운 기운

<학교>(1999년)

2학년5반은 새 아이들로 술렁거린다. 지난 3월5일 새 학기를 맞은 2000년 <학교>는 거의가 낯선 아이들이다. <학교2>에서 자진유급한 강산이와 전근 안 간 선생님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미니시리즈 <학교>의 신문수 선생님의 ‘스승다운’ 따뜻함을 그리워한다면 새로운 생물 선생 양희경의 ‘어머니다움’이 있고, 반항아 장혁의 카리스마가 아련하다면 새로운 고독남 조인성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학교>를 그저 예전 시리즈를 적당히 주물러서 짜낸 작품이라고 보면 곤란하다. ‘형만한 아우없다’는 속담의 부담감 때문인지 여러 군데 거듭나기의 고통이 느껴진다. 단회로 끝나거나 2회에 한 테마를 끝내던 과거 <학교>들과 달리 새로운 <학교>는 3주분이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으레 개개에 대한 소개로 예상되었던 새 학기는 아이들의 ‘반란’적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TV ‘학교붕괴’ 토론회에 나가 학교의 비상식적 ‘학교 지킴이 운동’을 비판한 것이다. 하나의 사건 속에 아이들을 놓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 인물들을 드러내려는 것이 종전 시리즈와의 가장 큰 차별화 전략이다.

진단이 없으면 치유도 없다

학원폭력이 극성일 때 ‘폭력운동 근절 운동’이네 경찰의 새삼스런 단속강화네 하면서 전 국민이 정의감에 불타서 광분했고, 이어 ‘왕따사건’에 불이 붙자 ‘왕따보험’이네 하며 난리도 아니었던 걸 다들 기억할 것이다. 바야흐로 요사이는 ‘학교붕괴’가 인기상품이다. 정작 아이들은 속병을 앓고 있는데 몸만 씻으라고 난리다. 이런 북새통에 사실 드라마 <학교>는 똑 떨어지는 ‘처방’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히려 환부를 드러낸채 받아야하는 고통스런 진단에 가깝다. 하지만 결국 진단이 없으면 치유도 없다.

“계몽이 아니라 눈높이다”

새 주간단막극 <학교> 이강현 PD 인터뷰

우연인지 운명인지 조연출 시절부터 <맹랑시대> 같은 청소년 드라마를 주로 했다는 이강현 PD는 지난해 10월 <학교2>의 후반부를 맡았다가 2000년 새학기 <학교>를 이어서 연출하게 되었다.

-<학교> <학교2>에 이어 당연히 <학교3> 일줄 알았는데 그냥 도로<학교>가 되었다.

=<학교2>는 미니시리즈였던 과거 <학교>에서 주간단막극으로 편성되면서 그 차별화를 위해 ‘2’라는 숫자를 부여했던 것이었다. 회사쪽에서 <학교>라는 드라마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고 <터미네이터1,2,3> 식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학교>로 가는 게 생명력 면에서도 좋겠다고 판단했다.

-<점프>에 나오던 박광현(세찬 역)이나 EBS <네 꿈을 펼쳐라>의 이인혜(다인 역)정도 빼고는 신인들이 많아 보인다. 기성 연기자들을 기피한 탓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먼저 극본상으로 캐릭터를 정하고 거기에 적합한 아이들을 고르다보니 총 7차례 PD, CP, 국장까지 반 공개 오디션으로 400여명 정도 본 것 같다. 하지만 참신함도 버릴 수 없는 욕심이었다.

-미니시리즈 <학교>가 오블릭(기울인) 앵글의 빈번한 사용과 음악의 진행에 따른 MTV식 편집 등, 그 외양면에서도 많은 시도를 한 것과 달리 새로운 <학교>는 조금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 튀는 앵글과 화면 구성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는다. 편하게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란 칭찬이 독특하다는 말보다 듣기 좋다. 화면보다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극중에서 ‘비버리 아이들’로 불리는 부잣집 아이들과 평범한 아이들의 벽 같은 것들이 첫회에 살짝 느껴졌다. 계층간의 문제를 다루고 싶은가.

=글쎄, 가진 자 못 가진 자, 어쩔 수 없는 갈등보다는 ‘부잣집 아이들은 이럴 것이다’식의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생기는 오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을 예정이다. 우리 드라마의 부잣집 아이들이 그렇게 생긴 것부터 ‘부티’나는 얼굴들은 아닐 텐데…. (웃음)

-앞선 시리즈에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웬만한 소재들은 거의 다루었다. 소재에 허덕이지는 않나.

=연출이 바뀌었고 작가가 바뀌었고 아이들이 바뀌었다. 98년, 99년의 ‘왕따’와 2000년의 ‘왕따’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재의 중첩에 대해 민감하기보다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지에 더욱 신경쓰고 싶다.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나.

=‘왜 더욱 계몽적이지 않지’하며 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교육’드라마가 아니다. 학생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교실이다 보니 학교가 배경이 되겠지만 가정과 그 외의 공간들도 중요하게 작용되고,‘청소년’이 중심이 되는 ‘눈높이’드라마일 뿐이다.

=‘학교4’에 해당하는 ‘물갈이’는 언제쯤 있을 예정인가.

=1년을 주기로 새로운 시리즈가 나갈 예정이다. 우연찮게 미니시리즈 <학교>가 2월 말에 시작되었고 <학교2>가 2월 말에 끝났다. 동광고등학교 2학년 5반은 그대로 있고 실제 학교일정과 동일하게 매년 3월에 새로운 학급원들이 구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