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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영화제를 만든 사람들
사진 정진환이영진 2000-03-07

영화제 폐막 이제 시작이에요

인터넷과 영화를 접붙여서 스파크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이런 시도는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상업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뭔가 빠졌고 앞뒤가 바뀌었다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시작했고 의미를 부여했고 하나둘씩 준비했다. 클릭하는 수많은 손가락들이 존중받는 그런 만남을 원했고 그래서 사이버공간에서 무시되기 일쑤인 수용자의 권리를 높이 쳐들었다. 지난 2월25일 폐막한 제1회 네티즌영화제는 첫 번째 ‘시위’라 불릴 만했다. 프로그래머 이재준(31) 천성일(30),프로듀서 제정훈(30), 그리고 심사위원장 구재모(27)씨는 한사코 ‘축제’였다고 부인할지라도 말이다.

“재미있는 일 한번 해보자.” 제정훈씨가 네티즌들이 주도하는 영화제를 만들어보자고 수신자 없는 메일을 띄운 것이 지난해 11월. 한달 뒤 꾸려진 준비모임 결과 33개 통신동호회 대표자들, 120명의 네티즌 심사위원단, 20만명의 네티즌 채점단이 짜여졌다. 구체적인 계획들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쪽은 인터넷업계. 그러나 한 인터넷 방송사를 통해 알게 된 인터넷업체와 서버 공급 이야기를 마친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인터넷업체쪽이 회원을 불리려는 목적으로 서버를 자신들의 사이트와 연결시켜 놓았던 것. “서버를 선택할 경우 애초 수용자 중심의 영화제라는 원칙을 지켜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게 천성일씨의 설명이다. 이들은 결국 서버를 포기했고 인터넷상으로 실시간 생방송하려던 개막식과 영화제 상영 일정에는 막대한 차질이 빚어졌다. 한 네티즌의 도움으로 뒤늦게 서버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상영 약속을 제때 지키지 못해 관객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1회로 끝날 행사가 아니라면 이번에 얻은 서버 세팅이나 송출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난관은 또 있었다. 국내에 수입된 외국 영화들이 대부분 VOD 판권은 갖고 있지 않아 애먹었고 몇몇 국내 제작사들은 흥행에 손해를 볼까봐 영화를 내주기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다. 부족한 문화공간이나 행사마저도 가뜩이나 서울에 집중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10개 도시를 연결하는 화상회의까지 구상하고 장비지원도 약속받았지만 운영자본이 부족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던 것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래도 영화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격려를 아끼지 않은 장윤현, 이영재 감독이나 <감각의 제국>을 상영하게끔 프린트를 내 준 이황림 감독, 마스코트를 공짜로 그려준 만화가 정훈이씨 등의 도움은 없는 살림에 큰 보탬이 됐다. 웹사이트를 구축할 때부터 설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보내주고 신문기사를 검색해준 네티즌들도 24시간 상근하면서 올빼미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의 일손을 덜어줬다.

“개인적인 특성을 갖는 사이버공간에서 커뮤니티를 구상한다는 게 쉽지 않죠. 일단 네티즌들의 공감대를 넓히고 확인했다는 점에서 만족해요.” 구재모씨는 절반의 실패 역시 소중함 경험이었다고 자평한다. 무작정 네티즌을 들먹이는 주먹구구식의 마케팅말고 지역, 성, 세대에 따라 다양한 경향들을 분석하기 위해 해마다 네티즌들이 선택한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작업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재준씨는 “그 결과는 저희 것이 아니거든요. 한국영화 발전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한 이 작업의 결과물들은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대가없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해요”라고 답한다. 4월에 기념 책자와 영화제 진행과정을 담아낸 CD를 내고 2회 때는 반응이 좋았던 오프라인 행사를 늘리고 대학의 영화동아리나 소모임,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 웹진운영자들까지 끌어들일 생각이다. 네티즌들이 직접 만든 영화나 배급되지 못한 독립 영화들을 상영하자는 얘기부터, 월드컵에 맞추어 한·일 네티즌영화제를 열자는 아이디어까지, 한숨돌릴 만한데도 사무국은 여전히 숨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