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아악, 꺄아악, 너무 멋져.” “정말이야, 언니. 나 미칠 것 같아. 어쩜 그렇게 잘 생겼을까? 마치 진주로 빚어놓은 것 같았어.” “아, 비극이야. 비극. 왜 이 바다 밑에는 해삼이나 말미잘 같은 것들밖에 없을까? 바다 위는 저렇게 눈부신데. 아, 나의 왕자님.” 인어 공주 에어리얼은 귀를 쫑긋 세우고 언니 인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언니 또 이야기 해줘. 그 왕자님이 어떻게 했어?” “아니, 얘는? 너는 빨리 잠이나 잘 것이지, 여기서 뭐하니. 꼬마들은 빠져. 열네살 되기 전에는 꿈도 꾸지마.” 그러나 인어 공주는 언니들의 이야기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머리 속에는 환상의 왕자님이 그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에어리얼은 몰래 소라 침대를 빠져나와 물 위로 올라갔다. 멀리서 옅은 태양빛이 수면 위에 스며들고 있었고, 아름다운 보트 몇척이 그 위에 떠 있었다. “오케이, 레오, 한번 더 가자구!” 커다란 구슬이 달린 검은 소라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자 “좋아요, 갑니다”하며 반대쪽 보트 위에서 누군가 바다 속으로 뛰어내렸다. 에어리얼은 직감했다. “왕자님이다.” 에어리얼은 재빨리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왕자님에게로 다가갔다. 눈부시게 푸른 눈동자, 오똑한 코, 왕자님은 유유히 물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에어리얼은 바위 뒤에서 몰래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엿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검은 옷을 입은 괴물들이 거품을 내뿜으며 그에게 다가가는 게 아닌가? 놀란 에어리얼은 옆에 있던 해초를 뽑아 괴물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이야기했다. “왕자님 어서 도망가세요.” 그런데 왕자님은 오히려 괴물에게로 와서 목에 걸린 해초를 풀지 않는가? 그리고 해초를 잡고 에어리얼에게로 다가왔다.
“아, 어쩌지, 어쩌지? 끼아악∼.” 에어리얼은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바다의 영령들이 일시에 달려왔다. 엄청난 소용돌이가 왕자의 몸을 감쌌다. 에어리얼은 온힘을 다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왕자를 구해 해변으로 올라갔다. 정성들여 그의 몸을 닦고, 햇볕에 말리며 기도했다. “아 나의 왕자님, 어서 눈을 뜨세요.”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놀란 에어리얼은 바위 뒤로 숨었다. 어여쁜 여자가 다가와 왕자님을 깨웠다. “어머 레오, 여기 있었군요. 정신이 좀 들어요? 촬영진들이 모두 난리가 났어요.”
“그러니까, 그 왕자님과 다시 만나기 위해 인간이 되고 싶다 이거지?” 문어 마녀는 에어리얼의 이야기를 듣더니 혀를 쯧쯧 찼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그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인어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녀는 그녀에게 잠이 드는 약을 먹였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디즈니 본사죠? 네, 수술을 해야 할 텐데, 기술자들을 좀 보내주세요.”
잠시 뒤, 일곱 난쟁이들이 마녀 의원으로 도착했다. “저희를 부른 것은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 공법을 사용하기 위한 거죠?” “그래, 의약 분쟁으로 인간이 되는 약 따위는 구할 수가 없다고. 수술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어.” 일곱 난쟁이는 초마이크로의 몸집을 가진 존재로, 각자 인간의 몸에 있는 일곱개의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생체 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신속하게, 양 귀와 양 콧구멍 그리고 입으로 하나씩 들어갔다. 그리고 남은 두명의 난쟁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 두 구멍을 찾아 내려갔다.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당신들이 볼 수 없는 허리 아래 세계로! 아이들은 모르는 4차원 구멍. 언더 유 시, 언더 유 시(Under you see, Under you see)” 그러나 몇십분이 지나도 두 난쟁이는 구멍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인어의 아랫도리는 온통 비늘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구멍이 없으면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되지 않으면 구멍을 만들 수 없다. 그들이 패러독스에 빠져 있을 때, 에어리얼은 눈을 뜨고 말았고, 다섯 난쟁이는 공주의 몸 속에서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레오는 성공적으로 영화 촬영을 마쳤다.
등장인물
에어리얼: 소녀에서 숙녀로 탈바꿈하려는 인어 공주. 위험한 호기심으로 큰 사건을 겪을 뻔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잘 아시다시피, 유명한 영화배우. <비치> 촬영 도중 물 속에서 사고를 겪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