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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리포트] 마르세유 국제다큐멘터리필름페스티벌
2001-07-25

국제경쟁부문 출품작 중 전통적 필름방식으로 작업한 것은 절반에도 못미쳐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이고 혁명적인 발전은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혁명적인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난 6월27일부터 7월1일까지 5일간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열린 제12회 마르세유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도 디지털 필름의 혁명적 진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국제 경쟁부문의 14개 작품을 비롯해 모두 28개 작품이 공식 선정되어 상영됐는데, 경쟁부문에서 전통적인 필름으로만 작업한 작품은 5개에 불과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는 시적이고 사실적인 영상 미학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UN 농업개발기구의 요청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한 키아로스타미의 디지털 영상일기이다. 감독이 직접 소형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아프리카 고통의 현재를 일기체적인 관찰을 통해 정리한 작품이다. 감독이 처음 방문한 아프리카의 비극적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현장, 에이즈로 부모들은 죽어가고 수천명의 아이들이 고아로 남겨진다. 현상적인 관찰과 기록에 불과해 영화에서 얻은 감독의 명성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디지털 소형 캠코더가 얼마나 대상과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 작품이다.

좀더 개인적으로, 더욱 새롭게

마르세유 영화제에서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던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들은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다. 대신 개인적인 관심과 주장, 그리고 경험을 담은 작품들은 강력한 발언으로 관객을 잡아내고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편집 기술의 놀라운 진전은 다큐멘터리 필름에 있어서도 영상표현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브라질의 루카스 밤보찌, 차오 구이마래스, 베토 마갈해스 3인의 감독이 만든 <끝없는 결말>은 디지털 영상표현의 새로움을 확연히 드러냈다. 낡은 필름처럼 색바랜 영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브라질의 작은 마을과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주인공들의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력한 인터뷰는 관객의 관심을 휘어잡았다. 중후한 색상의 무게감에 말년의 인생을 자신감 있게 보내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힘을 받고 있었고, 세련된 효과와 음악처리가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방식대로 여러 명의 스탭과 조명, 그리고 순발력이 없는 카메라로 작업했다면 이런 작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형 디지털 캠코더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들이 발언할 수 있게 해주었다.”(차오 구이마래스)

마리 프랑스 콜라드의 <세계의 여성노동자>도 이목을 끌었다. 벨기에에 있는 리바이스 공장의 폐쇄를 계기로 의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서로 다른 노동현실을 보고한다. 벨기에, 프랑스, 터키,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서로 다른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비교가 관객의 동의를 얻었다. 노동현실을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의 넋두리 같은 노래에 실어낸 에필로그도 차분한 설득력으로 다가왔다.

중국의 리앙차오와 준이판이 만든 <종이비행기>는 록과 마약에 물든 중국 젊은이들의 사라진 희망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중국 도시영화의 전통을 담아내는 한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약, 록, 그리고 사랑을 놓고 방황하고 갈등하는 현대 중국 젊은이들의 살아 있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프랑스 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기네 라빈의 <쿠데타, 리스본, 1974년 4월>은 충실한 증언의 재현을 연출해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1974년 포르투갈 쿠데타 당시 지휘부에서 쿠데타를 지휘한 오텔로 드 까르발호가 보낸 쿠데타 그날 밤을 실제 장소에서 연극적인 무대연출을 통해 표현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의 경험이 없이는 소화할 수 없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대상은 파트리치오 구즈만의 <피노체트>

국제 경쟁부문 대상은 필레의 파트리치오 구즈만의 <피노체트>가 받았다. 즐거운 유럽여행에 올랐던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체포되기까지의 긴박감 넘치는 현장을 재구성하면서 추적한 작품이다. 당시 정황들을 구체적인 인터뷰와 자료화면을 통해 재구성하고 분석했다.

마르세유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이미 전통적인 ‘필름’이라는 개념을 확대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 디지털은 단순한 기록방식의 변화를 넘어서, 새로운 표현과 발언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예증이었다. 필름으로 제작한 작품만을 경쟁작으로 선정하던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도 올해부터는 비디오로 제작한 작품도 선정하기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들려, 디지털 작업의 영역 확장을 실감할 수 있다.

마르세유 다큐멘터리영화제는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 내년에는 한국 특별 프로그램을 열 계획이다. 암스테르담과 함께 유럽 다큐멘터리 시장의 2대 마켓으로 꼽히는 마르세유의 한국 특집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외연적 확대라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세유=안해룡/ 비디오 저널리스트·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