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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 해라, 충분히 지루했다
2001-07-26

연예인 MBC 출연거부사태, 방송사와 연제협의 힘겨루기

<시사매거진 2580>의 보도로 촉발된 문화방송(MBC)과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의 갈등에 대해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보도 취지가 옳은 것이긴 해도, <…2580>이 좀 오버했다”, “그래도 집단으로 출연거부하겠다는 건 잘못이다”, “한바탕 소동 피우고 시간 지나면 어차피 해결될 문제 아니냐”….

연제협의 주장을 매일 그대로 실어나르다시피 하는 일부 신문들을 본 뒤 인터넷을 뒤져보면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대다수 네티즌들은 정반대의 편에서 연제협을 비판하고 있었다. 참 요란했다. 연제협의 출연거부선언(7월3일)에 이어 김건모, 박진영, 신승훈 등 연제협 소속 인기가수들이 모여 “우리는 노예라 불리기를 거부한다”고 선언(10일)했고, <…2580>은 ‘연예인 대 매니저’ 2편을 내보냈다(15일). 사태 초반의 관심사는 <…2580>에서 언급된 ‘노예 계약’의 진위 여부였지만, 그동안 매니저들이 문화방송에 대해 가졌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PD 비리, 가수들의 출연료문제 등이 우회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던 사태는 연제협이 <…2580>의 후속보도에 대해 ‘무대응’을 선언하면서 김이 팍 빠졌다. 연제협은 문화방송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 대신, 언론중재위와 민·형사상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더 내놓을 카드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모양이 됐다. 시끌벅적했던 사태는 그뒤 ‘지지부진’이다. 문화방송은 시종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되고, 시청자들을 위해 방송 파행은 끝내자”는 의견이고, 연제협은 “매니저들을 사기꾼으로 매도한 것은 왜곡·편파보도니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하라”는 원칙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제기되는 새로운 현상이 없으니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난감해진 것은 당사자들이다. 법적 대응을 천명한 연제협은 곧바로 태도를 누그러뜨리기도 힘들고, 문화방송이 사과방송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적다. 사태를 죽 지켜봐온 시청자들의 눈이 있으니, 타협을 한다 해도 적정선을 정하기 힘들다.

이번 일이, 연예매니지먼트산업이 거대 방송사를 난처하게 만들 정도로 급성장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또 연제협과 방송사 모두에 ‘교훈’을 주는 계기도 됐다. 먼저 연제협. 연제협 구성원들은 그동안 주로 방송사 예능국 PD들과 개별적인 접촉을 하며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이다. 방송사에는 필수적이라 할 연예인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막강한 협상력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를 너무 과신했다. 연제협은 문제가 된 <…2580>쪽에는 한마디 이의제기도 없이 곧장 문화방송 텔레비전 출연거부라는 강수를 뒀고, 이 때문에 처음부터 ‘집단행동’이라는 비판을 떠안은 채 싸움을 진행했다. 연제협 고위관계자마저 “초반에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를 하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연제협은 또 “일부에서 불공정 계약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노력없이 <…2580> 보도를 부인하는 데 급급했다. 집단적인 출연거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효과는 있었지만, 그를 뒷받침할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처사였다.

문화방송에는 “이번 일은 다 방송사의 업보다”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방송사는 탤런트들에게는 회당 수백만원씩 주면서, 가수들에게는 10∼20만원이라는 턱없이 적은 출연료를 지급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비판에 아랑곳없이 연예인들을 떼거리로 출연시켜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을 경쟁적으로 제작·방송한 것이 방송사들이다. PD 비리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기에 “이번 기회에 방송 프로그램들을 확 바꾸자”는 시청자들의 의견에 귀가 기울여진다. 문화방송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인 <생방송 음악 캠프>가 뮤직비디오로 대체됐을 때, 많은 네티즌들은 “립싱크를 안 보니까 훨씬 좋다”에서 “이참에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없애버리자”며 반겼다. 가수들을 방송사에 공급하는 연제협과 그들을 화면에 담는 방송사 모두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문화방송 내부에서도 이런 의견들을 반영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방송 예능국의 장태연 책임프로듀서는 “사태가 마무리되면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포함해, 그동안 문화방송이 타성에 젖어 제작·방송했던 프로그램들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와 연제협의 최종적인 소비자인 시청자들은 방송 파행을 동반한 둘 사이의 지루한 다툼을 지켜봐왔다. 이제, ‘달라진 프로그램’으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이번엔 시청자들이 방송사를 향해 ‘보이콧’을 선언하지 않을까.

황준범 기자/ 한겨레 문화부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