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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은 주목받고 싶다
2001-07-26

정적인 캠페인으로 구매욕구 자극한 SM5 광고

제작연도 2001년 제품명 SM5 광고주 르노삼성자동차 대행사 웰콤 제작사 주프로덕션(감독 김종원)

광고를 사랑하는 나름의 ‘개똥방식’이 있다면 좋은 광고의 제품에는 반드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제품이 제과류처럼 주머니 사정을 크게 눈치보지 않는 저가상품이라면 구매의 행동을 솔선수범하곤 한다. 그것은 비단 광고의 은밀한 유혹에 눈이 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수 광고의 매력을 선사한 주인공이라면 제품에도 그만큼 신경을 쏟았겠거니 하고 한번 믿어보는 것이다. 그닥 개연성이 높은 연결고리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버릇은 남아 있다.

최근 구매의 욕구를 한창 자극하고 있는 광고를 꼽는다면 서슴없이 르노삼성자동차의 SM5 CF를 지목하고 싶다. SM5가 단돈 몇백원으로 해결 가능한 먹을거리였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할 때도 있다. 볼 때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소유욕이 발동한다. 이 광고의 무엇이 그토록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지 찬찬히 점검해본다.

그냥 삼성이 아니라 르노삼성으로 기업명이 달라진 뒤 SM5 광고는 실로 ‘정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굳이 정적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국내 광고의 제품군 가운데 동적인 영상을 제일 좋아하는 부류가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거개의 자동차광고가 멋진 풍광과 질주의 맵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시선몰이에 나서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 그 모양새가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란 인상도 없지 않다. 그런데 SM5 광고는 튀기로 작정했는가보다. 새 차와 10만km를 달린 차를 나란히 비교하며 두차의 엔진소리에 차이가 없다는 얘기를 침착하게 전한 첫탄부터 조용한 목소리로 차별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역동적인 카메라워크 같은 특별한 영상의 기교없이 마치 인쇄광고처럼 카피 위주로 꾸며진 이 광고는 자동차 구매층에 제법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족집게처럼 선택해 제품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흠∼, 괜찮은데’라는 기분을 구매의 욕구로 제고한 것은 제2탄인 ‘누구시길래’편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체코 프라하 거리. 어느 카페의 넓은 창문을 통해 비내리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의 시야에 SM5가 부드럽게 멈춰서는 장면이 들어온다. 차에서 한 중년신사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내리더니 빗물을 타박타박 튀기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야속하게도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그 신사에게 정신이 팔린 카페의 여인은 커피에 넣으려던 각설탕을 손가락에서 놓치고 만다. ‘누구시길래 나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는 겁니까?’라는 말의 줄임말인 ‘누구시길래’란 마지막 카피가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블루빛의 모노톤 영상이 은은하게 감성을 매혹하는 광고다. 이 CF는 ‘길거리에서 멋진 차를 만날 때 운전자는 누구지?’ 하고 호기심을 발동하는 일상의 풍경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러고보니 그동안 많은 자동차광고들이 간과해온 점을 이 CF는 영리하게 포착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통해 누리고 싶은 것은 단지 대중교통수단보다 더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많은 자동차광고가 동어반복하고 있듯이 질주의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것도 중요한 요소일 터이다. 새처럼 날고 싶은 욕망을 땅에서나마 해결해주는 게 바로 자동차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자동차는 현시적인 소비의 대상이다. 사회적인 지위와 부유함의 정도를 뽐내고 싶은, ‘나 잘났다’의 표상인 것이다. ‘누구시길래’편은 이 심리를 절묘하게 포용했고, 품격있는 영상과 절제있는 스토리로 이를 풀어냈다. 가치를 아는 사람이 선택하는 차가 SM5라는 제법 자신감 넘치는 슬로건도 설득력을 얻었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제3탄 ‘엔진보증’편은 기능을 강조한 1탄과 브랜드이미지 제고에 주력한 2탄을 한데 아우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번 광고는 전작의 연장선에서 모노톤의 영상과 은은한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한 점이 특징. 우아한 옷차림의 한 여인이 SM5의 전시장을 지나가다 멈춰선다. 그가 몰고온 달마티안이 그냥 가자고 보채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그런데 이 여인, 힘도 좋다. 개줄을 힘껏 잡아당겨 건장한 달마티안을 멈추게 만들더니 쇼윈도를 통해 SM5 감상을 계속한다. 주인의 마음을 알았는지 결국 달마티안은 거리에 주저앉아버린다. ‘당신은 지금 2년 더 좋은 차를 보고 계십니다’라는 카피가 마지막으로 시청자의 가슴을 때린다. 여인과 시청자의 시선을 동일하게 처리해 감정이입을 유도한 화면구성, 절묘하게 재미를 돋우는 ‘미녀와 개’의 유머스러운 승강이 등이 이성과 감성을 두루 자극한다.

100,000km를 달려도 새 차 같은 엔진소리를 내고, 차주의 품격을 대변하며 주변의 시선을 끌 수도 있고, 또한 다른 브랜드보다 2년 더 오래 탈 수 있는 자동차라는 이 CF의 유혹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러나 가슴 한편이 뜨끔한 것도 사실이다. 광고는 SM5를 통해 자아를 번듯하게 드높이는 광고 속 모델처럼 되라고 시청자에게 추파를 던지지만 결국 겉치레 수단으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자신감 없는 행동의 발로 아닐까. 모순이라며 거듭 고개를 흔들어도 SM CF의 얘기에 다시 귀가 솔깃해지는 것을 보니 이번엔 광고가 이겼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