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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인류고뇌 사라진 전투극
2001-07-31

팀 버튼이 감독한 <혹성탈출>을 두고, "이 영화를 `SF 글래디에이터`로 팔 수 있기를 원했다"거나 "음악감독 대니 엘프먼에게 좀더 영웅적인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는 20세기 폭스사 직원의 말을 빌린 보도가 얼마전 미국에서 있었다. 8월3일 개봉하는 <혹성탈출>은 제작사의 이런 의도가 성공적임을 보여준다. <혹성탈출>은 팀 버튼의 발랄하고 짓궂은 재담 대신 1억달러짜리 블록버스터의 위용이 버티고 선 영화다.

팀 버튼이 4년 전 워너브러더스에서 만든 SF물 <화성침공>에서 보여준 장난기는 이랬다. 1m도 안되는 작은 키에 몸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해골형 머리의 외계인은 "평화를 원한다"더니 미국 대통령과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주저없이, 처참하게 학살했다. 우주선과 이들의 무기처럼 스펙터클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소품들은 의도적으로 보일 만큼 볼품 없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이 잔혹한 화성인들은 한 할머니가 즐겨듣던 올드 팝송에 말끔히 전멸됐다. <화성침공>과 달리 <혹성탈출>에서 외계(?) 원숭이들의 멋들어진 분장이나 모양새는 완벽에 가깝고, 우주선 불시착 장면 등에서는 시원한 쾌감을 선사하며, 위기에 빠진 인간은 좀체 구원될 것 같지 않다.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의 전율을 짜릿하게 선사한 바 있는 SF걸작 <혹성탈출>(1968년작)의 리메이크작이다. 68년작에서 원숭이 세상과 맞서 고뇌했던 인간 찰턴 헤스턴은 미공군 대위 레오 역의 마크 월버그가 대체했다. 2029년, 레오 대위는 우주정거장에서 유전자조작으로 지능을 높인 침팬지들과 갖가지 실험을 벌이다 알 수 없는 우주의 힘에 이끌려 시간과 공간이 동떨어진 행성에 추락한다. 그곳에서 그는 찰턴 헤스턴과 달리 원숭이와 고릴라가 인간을 학대하게된 이유나 배경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뜻밖에도 이 역할은 인간옹호론 원숭이 아리(헬레나 본햄 카터)가 맡았다. 종의 장벽을 넘어 레오에게 연정을 보내는 눈길이나 "인간을 야만적으로 다루면 우리도 인간과 다를 바 없다"고 고뇌하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원숭이 얼굴은, 본인에게 실례이지만, 실물의 그보다 매력적이다.

아리를 사랑하지만 오히려 경멸당하고 레오를 없애지 못해 안달난 무력주의 원숭이 테드 장군(팀 로스)은 "인간의 천재성과 잔인성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선조의 가르침에 힘입어 인간 말살의 최전선에 나선다. 팀 로스의 원숭이 변신도 놀랍다. 그는 원숭이 특유의 날렵한 몸동작을 자유자재로 보여줘, 인간보다 더 사려깊은 카터와 함께 원인에서 출발했다는 인류 진화론이 혹 거꾸로 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더해줄 지경이다.

그리고 문제의 반전이다. 68년작에서 찰턴 헤스턴은 마침내 탈출했지만 부서진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는 `이곳이 먼 혹성이 아니라 미래의 지구였구나,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는 절망어린 표정으로 영화를 끝냈다. 팀 버튼은 이에 버금갈 5가지 결말을 준비했고, 그 가운데 하나를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전에 대한 기대를 떨쳐버리는 게 이 영화를 좀더 재밌게 볼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다.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