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웬만하면 발끈하는 성질파 처녀들, 스바르탄의 <앙칼 처녀>

매일 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를 퇴치하는 가장 훌륭한 대사는? “사장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요.” 부푼 꿈을 안고 사내 견학을 하고 있는 신입사원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인사과장의 “나 로또 당첨됐거든. 뼈빠지게 일해봐요.” 일본에서 온 귀빈 야마도라 상을 접대하기 위해 추천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식점은? “욕쟁이 할머니 집.” 몸매 8단, 성질 9단의 쭉빵 과격파 처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제를 불러일으킨 웹 만화 <앙칼 처녀 도전기>가 엠파스에 <앙칼 처녀 시즌2>를 이어가며 우리 인생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교훈들을 더해가고 있다.

<앙칼 처녀 도전기>의 애초 주인공은 대재벌을 목표로 패션그룹 돈타에 지원하지만 지나치게 튀는 패션에 발끈하는 성질머리로 고난을 겪는 유니, 출중한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필살기를 넣기 전에 쓸데없는 세리머니를 하다 역전패당하기 일쑤인 프로레슬러 진경, 딱 보기에 ‘쾌활한 왕따’인 보모 희경 등 세명의 앙칼진 처녀.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등장하는 조연들에 의해 주도권이 바뀌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앙칼 처녀 시즌2>에서는 밀려오네 그룹의 여걸 최 이사가 영화산업에 뛰어들고, 너절한 만년 과장 김 과장이 에로비디오 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변신하는 등 더욱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앙칼 처녀>가 애초 보여준 미덕은 등신대의 늘씬 풍만한 몸매를 가진 여주인공들이 전해주는 상큼한 섹시 개그였다. 얼빠진 남성 주인공들의 ‘자위 만발’ 개그만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외모와 성격의 반비례로 고난받는 여주인공을 내세운 ‘볼 테면 봐라’ 식의 유머는 상당한 도발임에 분명했다. 더불어 <앙칼 처녀>는 자칫 섹시 코드가 자기 복제를 거듭하며 구태의연해지는 함정을 재빨리 벗어났다. 풍성해진 조연들의 등장은 만화의 중심축이 어디인지 헷갈리게 하고 있지만, 황당무계하게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 속에서도 교묘하게 긴장의 끈을 이어가는 만화가 스바르탄의 솜씨는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전편에서 흐지부지 끝을 맺은 전과로 인해 후속편 역시 산만하게 퍼져나가다 수습 못할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좀더 분명한 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매력적인 데생과 화려한 스타일 감각만으로도 <앙칼 처녀>가 보여주는 신선미는 만만치 않다. 더불어 자칫 외적인 멋에만 치중할 수 있는 그림 솜씨가 생활 속의 에피소드에 녹아들어가면서 만들어내는 교묘한 앙상블이 더욱 돋보인다. 만화는 동해안 유격훈련장의 신입사원 연수, 사고난 아들의 병실을 지키고 있는 막무가내 어머니, 심야 맥주 바에 가면 항상 있는 개차반, 찜질방의 왕수다 여고 동창생 집단 등 언제나 리얼리티가 철철 넘치는 다채로운 현장 속을 관통해간다. 영화 판권을 살 만한 재목이 되는지 알기 위해 한강으로 차를 몰아 뛰어내리고, 브라더 미싱으로 포경수술 자리를 꿰매는 등 ‘여차하면 발끈’하는 성질파 개그는 한국인의 성격을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