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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의 남선호 감독

“14년 감독지망 내 얘기 아내 등골 많이 휘었죠”

<모두들, 괜찮아요?>는 남선호(41) 감독이 연출한, 감독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다.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마침내 지망생 꼬리표를 뗀 상훈과 그에게 기꺼이 등골을 빼준 아내 민경, 그리고 민경네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눈물바다를 연상하기 쉽지만, 뜻밖에 <모두들, 괜찮아요?>는 ‘홈 코미디’다. 상상만 해도 진저리를 치게 되는 그 긴 시간과 사연을 영화로 옮기면서 눈물보다 웃음을 앞세운 속내가 궁금해진다.

남 감독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영화에서는 10년이지만 실제로는 14년 정도 된다”며 그 ‘진저리 쳐지는 시간’에 4년을 보탰다. 서울대에서 연극반 활동을 열심히 하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해 경영학과 졸업장을 들고 사회로 나온 뒤, 극단 <한강>을 창단해 극작 및 연출활동을 하다가, 1993년 러시아로 영화 유학을 떠나기 전 ‘어느 무렵’께를 영화감독 지망생 인생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이다.

<모두들…>을 제작한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의 말마따나 “대한민국 영화감독 치고 마누라 등골 안 빼먹은 놈이 어디 있느냐”고 쳐도, ‘14년은 좀 심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당사자인 남 감독은 “제가 예의 바른, 품성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곤 짧게 웃는다. 이것 저것, 혹은 이 사람 저 사람 배려하느라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것을 짧게 말한 것 같은데, 수다스럽고 넉살좋던 영화 속 상훈과는 사뭇 다르다.

천정을 향해 훌쩍 치솟은 큰 키지만 강퍅스러워 보일 정도로 깡마른 체구 어디에서 그렇게 질긴 뚝심과 배포 혹은 철판같은 안면이 나왔는지를 캐내기 위해서는 또 묻고, 다시 묻고, 재차 물어야 했다. 종합해 보면 이렇다. “영화 속 민경처럼 아내가 무용학원 강사로 일해 살림을 꾸렸다. 나의 러시아 유학을 주도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내였고, 그 힘으로 아내가 여태 버텨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어떻게 10년 넘게 직장없이 지낼 수가 있느냐고 묻지만, 나는 회사에 매일 출근하면서 가고 싶지 않은 데 가고 만나기 싫은 사람 만나며 사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다.”

남 감독은 “그 시기에 제일 하고 싶고, 해볼 만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극영화 만드는 일’ 같아서 영화감독 지망생을 시작했고, 일단 시작했으니 한 편은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제껏 한 길을 걸어왔다. 다른 작품을 준비하던 중에 “니가 사는 게 코미디니까 니 얘길 영화로 만들어 보라”는 오 대표의 얘길 듣고 2003년 5월께 <모두들…>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원래 그 속에 빠져 있으면 비극인데 밖에서 보면 웃기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고, 거장처럼 삶을 반추하는 영화를 만들 수도 없어 일상적인 웃음들을 관찰하고 가장 소박하게 영화로 만들었다”는 게 연출의 변이다.

남 감독과 가족들의 삶이 영화의 큰 축이긴 하지만, 그들의 삶을 그대로 영화 속 일상으로 옮겨놓은 건 아니다. 남 감독은 “영화는 기본적으로 픽션”이라며 “인물구성만 실제와 같고 나머지는 실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이다. <모두들…>에서는 치매에 걸린 민경의 아버지가 아들네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는 식사를 마친 뒤 며느리에게 “오늘 음식이 참 좋았습니다”라며 팁을 건넨다. 이 장면은 실제로 치매를 앓았던 남 감독 장인의 일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교회에서 손녀의 찬송가 피아노 반주를 들은 장인이 “오늘 연주가 참 은혜로웠습니다”라고 인사했던 일을 재구성했단다.

남 감독의 첫 영화는 24일 3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한다. 언론시사회가 있었던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예정보다 일찍 스크린쿼터 축소를 확정짓는 바람에 상당수 기자들이 시사회에 불참했다. 하지만 그 동안 성불의 경지라도 도달한 것인지, 남 감독은 “마술피리 오 대표가 열린우리당 하고 악연이 많아 <고독이 몸부릴 칠 때> 땐 탄핵 반대 촛불집회 때문에 더 난리였다”며 “영화 준비하면서 엎어지는 것까지 예상했는데 개봉까지 하게 됐으니 다행”이라고 웃었다. 또 “다음엔 갈등이 세고 서스펜스가 있으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영화를 찍고 싶지만 아직 시나리오도, 기약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행상 한번 감독이 됐으니 계속 감독이라 불리지 않겠느냐”는 느긋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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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임종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