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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나의연인] 마릴린 먼로
2006-03-24

‘섹시함’ 뒤에 숨은, 내밀한 슬픔의 매력

이상하게도 내겐 나만의 여신이 없었다. 한참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절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주말의 영화>를 목을 빼고 기다리거나 용돈이 생기면 얼른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했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꼭 특별히 내가 숭배하거나 사랑하는 어떤 스타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예컨대 공책, 책받침, 책갈피 등등 온갖 학용품에 왕쭈셴(왕조현)이나 저우룬파(주윤발)의 얼굴이 넘쳐나던 시절에도 난 그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난 스타 따위에 연연하는 철부지가 아냐’라는 식의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그 매력적인 홍콩스타들도 <공자다정>같은 영화에선 어처구니없을 만큼 꼴사나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데 불과하다.

전설적인 섹스심벌이자 세기의 스타로 알려져 있는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본 먼로 주연의 영화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로 기억하는데,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긴 했지만 먼로가 특별히 매력적인 여배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먼로의 하얀 치맛자락이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날리는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 <칠년만의 외출>은 내겐 빌리 와일더의 영화였을 뿐이고, 제인 러셀까지 가세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도 하워드 혹스의 이색적인 뮤지컬로 비쳤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본 한 편의 마릴린 먼로 영화가 처음으로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건 오토 프레밍거의 <돌아오지 않는 강>이었다. 블루진에 하얀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먼로에게 어울리는 의상은 온갖 장식들로 한껏 멋을 낸 여성스러운 복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묘하게 성적인 암시를 풍기는 그녀의 얼굴과 제스처는 그걸 강조하고자 하는 의상과 만날 땐 오히려 천박한 인상을 줄 뿐이지만, 그와 대조적인 단순한 의상에 싸여 있으면 놀랄 만큼 청초한 빛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하지만 여타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먼로의 매력이 온전히 발휘된 유일한 영화는, 존 휴스턴의 <기인들>일 것이다. 잠시나마 그녀의 반려자이기도 했던 아서 밀러가 각본을 쓴 이 작품은 밀러의 먼로 예찬인 동시에 그녀를 향한 작별인사이기도 하다. 세파에 시달린 순수, 성스러운 창녀, 성숙한 소녀 내지는 경험 많은 처녀 등등, 먼로와 결부될 법한 ‘음란한’ 상상과 정의들은 이 영화를 통해 완성되었다. 한편으로 섹스심벌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먼로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을 곰삭은 슬픔과 탄식, 절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영화의 안과 밖이 기묘하게 겹치는 순간이랄까. 먼로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아서 밀러와 이혼했으며 일년 뒤엔 알콜중독과 수면제 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속에서 먼로는 클라크 게이블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냥 살죠?”(How do you just live?) 게이블의 답변. “먼저 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가려운 데를 긁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날씨가 어떤지 보죠. 깡통에 돌도 던지고 휘파람도 불고요.” 그건 먼로가 결코 누려보지 못했던 삶일 것이다.

문득 작년에 열렸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그것은 브레송이 바로 <기인들>의 세트장에서 촬영한 먼로의 사진이었다. 보는 이에게 기묘하게 슬픈 느낌을 전하던 그 사진은 앤디 워홀의 의도적인 과장과 풍자를 가볍게 넘어서며 거장다운 솜씨로 먼로의 내밀한 슬픔과 피로감에 공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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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