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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미리 보기 [1]
사진 이혜정이다혜 2006-04-13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준비하면서 노동석 감독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시나리오 수정은 일도 아니었다. 투자문제로 속을 썩이는 나날이 이어지고, ‘나에게 영화는 뭘까’라는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영화진흥위원회의 HD 제작지원을 받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지난 1월 중순 촬영을 시작, 3월25일에 촬영을 마쳤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석 감독은, 영화가 전부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 많은 사람을 만나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순간이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동석 감독은 무사히 촬영을 끝낸 데 대해 스탭들과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 글은 촬영현장 방문과 노동석 감독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미리 보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야기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노동석 감독의 데뷔작 <마이 제너레이션>에 이은 청춘영화다. 제목만 ‘마이(나의)’에서 ‘우리’로 확장된 게 아니라, 내용과 제작과정 모두 전작과 상당 부분 다른 색깔과 규모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인공은 종대(유아인)와 기수(김병석)다. 어려서부터 종대는 기수를 친형처럼 따랐다. 기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꿈을 펼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종대는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김 사장(최재성)처럼 되고 싶어하며 부유하는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기수는 형의 아들인 조카 요한(이동호)을 맡아 키우게 되고, 종대는 김 사장의 안마시술소에 취직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기수가 종대에게 갖고 있는 죄의식의 이유와 종대와 김 사장의 기묘한 인연이 드러난다.

기수 역의 김병석

촬영 도중 가편집본을 보던 노동석 감독이 혼잣말처럼 “종합선물세트네”라고 중얼거렸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전작 <마이 제너레이션>에 비해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스탭들이 촬영하면서 가장 즐거워했다는 두번에 걸친 춤장면은 찰나의 행복을 보여주며 낭만적인 느낌을,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 안마시술소에서의 폭력장면은 장르영화를 연상시키는 어둡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노동석 감독이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썼다는 촌철살인의 대사들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삼촌, 변태가 뭐야?” “(요한을 보며 진지하게) 너무 잘생겨서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이야”). 다만, ‘청춘영화’와 흔히 나란히 놓이는 ‘성장영화’라는 표현이 쓰일 수 없는 것은 전작과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속 대사처럼 “착하니까 나빠질 수도 있는” 청춘은, 성장이라는, 다소 안전하고 기성세대가 받아들이기 쉬운 단어와 대척점에 있다. 노동석 감독은 종대가 종대이기 때문에, 기수가 기수이기 때문에 갈 수밖에 없는 순간을 향해 두 사람이 끝까지 걸어가게 한다. 제도에 순응해서 맞을 수 있는 해피엔딩을 그리는 대신 주인공들의 순간순간에 집중함으로써 그들이 영화 속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젊음의 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안마시술소 장면을 찍기 위해 제작진은 폐업 직전의 안마시술소를 어렵게 섭외했다. 촬영 가능한 기간은 단 3일. 크랭크인을 하자마자 노동석 감독은 안마시술소에서 3일 만에 영화 전체 촬영분의 30% 가까운 분량을 찍었다. 촬영이 끝난 뒤 했던 앙케트 결과 스탭 대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장소로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라며 안마시술소를 꼽았다. 하루에 8∼9신씩 찍어야 하는, 배우건 스탭이건 나가떨어질 상황에 총까지 쏴야 했던 긴장 때문인지, 안마시술소 장면은 ‘이러다 죽겠다 싶었던 촬영’으로도 꼽혔다. 투자가 잘 안 되던 차에 어렵게 시작한 촬영의 시작치고는 가혹한 면이 없지 않았다. 조상윤 촬영감독이 감독에게 귀띔했다. 이 장면이 잘 나와야 스탭들이 모두 정말 좋은 영화 하고 있구나 하고 끝까지 갈 힘을 얻을 거라고. 노동석 감독은 안마시술소에서 마지막 장면을 찍고 나서, 모니터 앞으로 모여든 스탭들이 내지르는 기쁨의 탄성과 모두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다가 생각했다. ‘아, 이래서 영화를 하고 있구나.’ 3억5천만원의 예산이지만 30억원 예산의 영화 같은 느낌으로 관객을 만나겠다는 노동석 감독의 각오는 스탭와 배우들이 만들어낸, 이같은 여러 장면들에 있었다.

배우 & 스탭_“영화의 색깔은 이들 손에 달렸다”

김 사장을 연기한 최재성(오른쪽)

“자, 레디, 사운드, 카메라, 액션.” 촬영현장에서 노동석 감독이 입을 여는 몇 안 되는 순간은 주로 촬영에 들어가는 것을 알릴 때다. 장소 섭외나 현장 세팅 문제로 스탭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있지만, 배우에게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는 거의 없다. <마이 제너레이션> 때의 버릇이 남아 대사를 잘 외워오지 않는 기수 역의 김병석에게 일침을 놓은 것도 노동석 감독이 아니라 김 사장 역의 최재성이다.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를 연상시키는 낮은 목소리로 “너 대사 안 외웠냐?”라고 최재성이 추궁하자 김병석이 당황한다. 최재성이 성경책을 읽고 있는 장면에서 창문 너머로 거짓말처럼 ‘진짜’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 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팀이 만난 여러 행운 중 하나. 연기에 대한 특별한 코멘트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 합이 맞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던 노동석 감독이 마침내 한마디한다. “배우들에게 대본 좀 갖다드리세요.” 배우들이 받아든 대본을 펼쳐볼 시간도 없이 촬영이 속개된다. 그런데 이번엔 오케이다. 매번 이런 식이다.

배우가 마음에 들면 배역을 인물에 맞출 수도 있다는 노동석 감독은 배우에게 연기에 대한 지시를 하는 대신 배우를 관찰한다. 촬영팀과 조명팀이 현장에서 세팅하는 동안 노동석 감독은 현장 근처를 배우와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기도 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서 배우들이 대사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다. 배우에게 직접 요구하면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공간 안에서 다큐처럼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다. 종대 역에 관심있는 여러 배우들을 만나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 만난 유아인이 종대에 대해 울컥하듯 뱉은 “슬프죠”라는 한마디에 캐스팅을 결정한 것은 시나리오의 역할을 영화 속에 살려내기 위한 최고의 방책이다. 영화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은 사람을 보는 것이라는 생각은 배우뿐 아니라 스탭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실제 예산에 0이 하나 더 붙은 것 같은 화면을 보여주겠다고 말해 감독을 감동시킨 촬영감독을 비롯, 종대와 기수가 어려움에 찌든 게 아닌 그 나이 또래의 발랄함을 갖출 수 있게 한 의상팀장,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상투적일 수 있는 플래시백 장면들을 CG없이 매끈하게 그려낸 미술감독과 조명감독은 때로 감독보다 정확한 눈으로 현장 진행을 도왔다.

정은 역의 강초롱

“영화의 색깔을 절반 이상 좌우하는 것은 스탭와 배우들이다.” 노동석 감독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어울리는 최고의 스탭, 배우들과 함께 일했다고 자부한다. <마이 제너레이션> 때 6명에 지나지 않았던 스탭 수가 40명으로 늘어난 것과 아는 사람들로 구성된 출연진이 훨씬 다양해진 것은 ‘상업영화’를 찍으면서 겪은 변화다. 김병석은 <마이 제너레이션>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을 노동석 감독과 함께하고 있지만, 종대 역의 유아인은 <반올림>으로 얼굴을 알린 청춘스타이며, 최재성은 <공포의 외인구단> <여명의 눈동자> 등에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준 중견배우다. 요한 역의 이동호는 현장에서 오락부장도 되었다, 큰형님도 되었다 하며 촬영현장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컷을 다시 가면 “아이, 왜∼” 하며 투덜거리다가도, 한번에 OK를 받으면 우는 연기를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칭찬을 받으러 감독에게 달려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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