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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 없이 시신을 지고, 한발짝씩
2001-09-19

단편영화 <봄산에> 촬영현장

무명 소복이 거치적거리지도 않을까. 치마는 점점 허리춤을 불룩하게 만들며 올라간다. 생전에 상처만 주었던 아버지의 시신을 산 높이 묘자리로 옮기는 두 모녀. 모녀의 가슴엔 지나온 일들에 대한 기억이 땀방울처럼 맺혀간다.

이곳은 올해 초 이스트만 코닥 단편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던 이지행 감독의 <봄산에> 촬영현장. 총 닷새간의 촬영기간 중 두 번째 날로, 지게꾼이 나르던 관이 굴러떨어진 뒤 결국 모녀가 시신만을 겨우 들고 산을 오르는 부분을 촬영하는 날이다. 관이 굴러떨어질 만큼 가파른 곳이 필요한 이날 현장은 특별히 산세가 험한 양평 중원산 기슭이었다. “4월달부터 조감독(정수진)과 헌팅을 다녔어요. 서울 경기에 있는 산들은 거의 다 다녔죠. 가파르고 바위도 많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여기가 적당했어요.” 제대로 찾아낸 듯, 스탭과 배우들이 발 딛고 가만히 서있기도 힘이 들 만큼 경사가 상당하다.

미국 칼아츠 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한 이지행 감독이 한국에서 만드는 첫 단편 <봄산에>는 감독 자신의 체험이 많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 감독 자신의 모습이 비칠 딸 역은 <박하사탕>의 문소리씨가 맡았다. 74년생 동갑내기인 문소리씨와 이지행 감독은 집도 서로 가까운 곳이라 캐스팅한 뒤 엄청 친해졌다고. “오후 3시쯤의 느낌”을 담는다던 이날 낮 촬영은 4시에 파했다.

글 최수임 sooee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