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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오케스트라, 말은 필요없어!
2001-09-19

<Stomp out Loud>

1997년, 감독 루크 크레스웰, 스티브 맥니콜라스 화면포맷풀 스크린 <Brooms>: 1.85:1 지역코드 All

가끔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하는 DVD 타이틀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정통 오페라라던가 진짜 북극탐험기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생각만 앞설 뿐 이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웬만한 사전 정보 없이는 수많은 DVD 타이틀 속에서 끝도 없이 방황만 하게 되지, 콕 집어 그런 타이틀 하나를 골라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버리는 셈치고 아무거나 일단 골라보자고 수백번 다짐하고 또 행동에 옮겨보려 하지만, 무참하게도 결과는 거의 똑같다. 이럴 때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관련잡지 등을 뒤져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잠시 빌리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적중률이 확실하게 높은 방법은 취향이 비슷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며칠 전 두 명의 친구를 통해 하나의 DVD 타이틀을 추천 받았다. 제목은 <Stomp Out Loud>. 국내에서도 두 번이나 내한공연을 가진 Stomp의 공연실황을 담은 것이다. Stomp는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에 전용 극장을 가지고 있고, 7년 연속 브로드웨이 극장 공연 티켓판매량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공연이다. 국내에서는 내한공연도 공연이었지만, <난타>가 유명해지면서 그 원조로도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무대형 공연이 DVD 타이틀로 출시되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그래서인지 <Stomp Out Loud> DVD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잠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Non-Verbal 퍼포먼스답게 이 <Stomp Out Loud> DVD에서 정상적인 형태의 말은 거의 들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온갖 잡동사니들을 때리고 두드리고 쓸고 치고 비비는 소리들만이 가득할 뿐이다. 놀라운 것은 그 소리가 리드미컬한 수준을 넘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만큼 매력적인 타악기의 향연으로 승화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소리들뿐만이 아니라 소리에 꼭 맞게 의도적으로 연출된 무대와 소품, 그리고 Stomp 단원들의 현란한 몸짓이 한 몫을 차지하는 점은 매우 놀랍다.

특히 일정한 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단원들의 자유분방한 스텝이 고도의 연출과 엄청난 훈련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에 경외심이 들기까지 한다. 아쉬운 점 한가지는 돌비 써라운드 시스템에 의한 녹음 방식을 사용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야외에서 펼쳐지기 때문인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 같은 깨끗한 사운드를 기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공연 실황 말고도 <Stomp Out Loud> DVD에는 <Brooms>라는 특별한 단편영화가 하나 더 수록되어 있다. 긴 빗자루를 뜻하는 <Brooms>는 Stomp의 퍼포먼스를 35mm영화의 형태로 기록한 일종의 실험적인 단편영화로 94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단편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었다.

김소연/ DVD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