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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의 야망
2001-09-20

컴퓨터게임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영국에서 열리는 게임쇼 ECTS는 한때 미국의 E3, 일본의 도쿄게임쇼와 함께 국제 게임산업의 대표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최근 몇년 유럽 게임산업의 쇠퇴와 함께 ECTS의 위상도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올해 9월 초 열린 ECTS만 해도 메이저급 게임회사는 대부분 빠진 조금은 김빠진 축제가 될 판이었다. 그런데 게임업계의 지각을 흔들 중대 사건이 일어났다.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의 제작사 블리자드의 신작 발표다.

블리자드는 2004년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오늘날의 블리자드가 있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고전 <워크래프트>의 세계를 베이스로 한 매시브 멀티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이다. 쉽게 말해 <리니지> 같은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을 만든다는 얘기다. 블리자드의 성공은 배틀넷 등 네트워크 플레이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MMORPG에 진출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다.

블리자드가 온라인 게임에 달려들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된 바였다. <디아블로2>가 아무리 많이 팔렸어도 한번 팔고 나면 끝이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선호하는 네트워크 플레이를 지원하려면 서버를 운영해야 한다. 서버를 관리하고 가끔 업그레이드까지 하려면 패키지 제작비말고도 추가비용이 든다. 게다가 구입해서 플레이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서버 역시 계속 확충해야 한다. 패키지를 하나 팔 때 50달러라는 목돈이 생기지만 이걸로 수익은 끝이고, 앞으로는 돈들 일만 남았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한달에 10달러에서 15달러 정도를 다달이 벌 수 있다. 얼른 계산해봐도 서너달이면 패키지 게임에서 벌 돈을 뽑는단 얘기다. 사람 수가 느는 만큼 벌어들이는 돈도 많아지니, 머릿수 느는 걸 걱정할 필요도 없다.

블리자드는 사실 믿는 구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야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외국에선 사정이 다르다. <워크래프트2>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게임 중 하나로 꼽히고 있고, <워크래프트3> 대신 <스타크래프트>가 나온다고 발표되었을 때 실망하는 게이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워크래프트> 간판을 달고 나온다는 이유만으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판타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족과 오크족의 대결을 축으로 하는 세계관은 한때 어드벤처게임 제작이 시도되었을 정도로 탄탄하다.

블리자드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해왔다. <워크래프트>로 본격적인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시대를 열었고, 너도나도 실시간 전략 시뮬에 달려드는 상황에서 한물간 장르라고 평가받던 롤플레잉게임에 뛰어들어 <디아블로>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안전하게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이어가는 대신 <스타크래프트>라는 새로운 게임을 들고 나왔고, 이제 다시 온라인 게임에 도전하고 있다.

블리자드의 공세는 무서울 정도다. 한국 게임산업 사상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리니지>가 후속작 개발을 등한시하고 있고, 눈에 띄는 ‘포스트 리니지’가 변변치 않은 상황이다.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이 들어온다면 국내 온라인업체가 지금까지 그렇게 주장하던 ‘온라인 부문에서의 비교 우위’가 허무하게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비디오 게임기의 최강자 <파이널 판타지>도 PC와 플레이스테이션2를 잇는 새로운 개념의 온라인 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은 거인들의 전쟁터가 될지 모르겠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