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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리얼리스트
2001-10-04

<천국의 나날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의 네스토르 알멘드로스(Nestor Almendros)

촬영장은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긴장지대이다. 방금 전가지 개어 있던 하늘에서 소낙비가 내리는 것이 예사이고, 주연배우의 늑장에 몇 시간씩 작업이 지연되는 등 순발려과 인내심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곳, 프랑스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교사에게 기회가 온 것도 그 부산한 촬영장이었다. 우연히 에릭 로메르의 <Paris Vu Par>의 촬영장을 구경하다 예의 돌발 상황이 벌어진 것. 카메라맨이 감독과 심한 말싸움을 하다 급기야 현장을 떠나버렸고, 촬영은 돌연 중단되고 말았다. 구경을 하던 교사는 자신이 카메라맨임을 밝혔고 중단된 촬영의 바통이 그에게 넘어왔다. 세계적인 촬영감독 하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스페인에서 태어난 네스토르 알멘드로스(1930~1992)는 프랑코의 파시즘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따라 18살 되던 해 쿠바로 이주했다. 학창 시절부터 단편영화를 찍었고 영화촬영을 향한 욕구에 이끌려 뉴욕을 향한다. 그러나 그를 다시 쿠바혁명이 불러들였다. 1959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그는 정치다큐멘터리로 카스트로의 쿠바 건설에 뛰어들었다. 이때의 작업은 빠르면서도 정확한 그의 촬영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두편의 영화가 상영금지를 당한뒤, 알멘드로스는 누벨바그가 일렁이던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그것이 새 물결의 해안, 에릭 로메르의 촬영현장에 스페인어 교사가 서성거리게 된 내력이다.

"가장 훌륭한 조명은 자연광이다." 알멘드로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찍었다. 1992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일상을 철학의 배지로 삼는 로메르와 인공적영상에 염증을 느끼게 된 프랑수아 트뤼포가 알멘드로스를 택한 건 우연일 리가 없다. 그리고 트뤼포의 <야생의 아이> <아텔 H. 이야기>, 로메르의 <오후의 연정> 등을 통해 할리우드는 그를 뒤늦게 발견했다. 할리우드 첫 영화인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로 그는 79년 오스카 촬영상을 받았고, 그뒤로도 세 차례나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촬영서적 집필에도 주력한다.그의 화면은 관객에게 상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걸 원칙으로 한다. 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카메라를 대하는 그의 태도이다. '사실'이라면 성마른 기록자를 연상하는 이들에게 <천국의 나날들>은 자연주의를 신봉하는 진정한 시선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60년대 미국 남부의 광활한 대지가 밀밭의 아름다운 풍광과 메뚜기떼의 습격이라는 자연의 대재앙을 오가며 70mm 대형화면 위에 가감없이 펼쳐진다. 인상주의 유화를 연상시키는 은은한 화면은 자연의 빛에서 연유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직전의 30분, 이 '매직아워'의 빛으로 해질녘 밀밭과 농부들의 모습을 자연과 함께 포착해낸 거대한 광경속에서 관객은 인간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러나 지울 수 없는 비애감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현실감을 살리려는 이러한 시도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불은 있는 그대로의 불빛을 담을 때 가장 생명력을 지니게 되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실제 빛을 이용할 때 방 안의 느낌이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실제 <천국의 나날들>의 캠프파이어신은 스포트라이트에 천조각을 대고 흔들어서 불빛을 흉내내던 기존의 조악한 방법 대한 프로판 가스의 불빛을 이용해 인공적이 불빛에서 탈피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구사한 것이었다. 때로 자연광을 기다리는데 한나절이 걸리는 수고가 요구되었지만, 그는 필요이상의 인공장치가 관객을 현혹시키며, 기교를 뽐내려는 과시에서 비롯된다고 여겨 기피하였다.최첨단 디지털 장비로 빠른 편집과 시각을 자극하는 현란한 조명에 길들여져, 현실이 소박한 모습에 흥미를 가질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시대이다. 매트 페이팅도 그 흔한 특수효과도 없지만, 실재하는 것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긴 호흡에 담아낸 알멘드로스의 아날로그식 화면은 어떤 기교도 따라올 수 없는 기적적인 충만함을 선사한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경험을 자서전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비롯한 글 속에 남겨 두었다.이화정/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필모그래피<빌리 배스게이트> (Billy Bathgate, 1991) 로버트 벤튼 감독<뉴욕 스토리>(New York Stories, 1989) 우디 앨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감독<나딘>(Nadine, 1987) 로버튼 벤튼 감독<제2의 여인>(Heartburn, 1986) 마이크 니콜스 감독<마음의 고향>(Places in the Heart, 1984) 로버트 벤튼 감옥<일요일이 기다려진다>(Vivement Dimanche!, 1983)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해변의 폴린느>(Pauline at the Beach, 1983) 에릭 로메르 감독<살의의 향기>(Still of the Night, 1982) 로버트 벤튼 감독<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 1982) 앨런 J, 파큘라 감독<푸른 산호초>(The Blue Lagoon, 1980) 랜달 클라이저 감독<마지막 지하철>(Le Dernier Metro, 1980)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 로버트 벤튼 감독<바람둥이 길들이기>(Goin' South, 1978) 잭 니콜슨 감독<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 테렌스 맬릭 감독<코코 말하는 고릴라>(KoKo, Le Gorille Qui Parle, 1977) 바벳 슈로더 감독<메이트리스>(Maitresse, 1976) 바벳 슈로더 감독<O 후작 부인>(Die Marquise Von O, 1976) 에릭 로메르 감독<장군 이디 아민 다다>(Idi Amin Dada, 1974) 바벳 슈로더 감독<나의 작은 연인들>(Mes Petites Amoureuses, 1974) 장 외스타슈 감독<구름에 가린 계곡>(La Vallee, 1972) 바벳 슈로더 감독<오후의 연정>(L'Amour L' apres-midi, 1972) 에릭 로메르 감독<클레르의 무릎>(Le Genou De Claire, 1970) 에릭 로메르 감독<모드집에서의 하룻밤>(Ma Nuit Chez Maud, 1969) 에릭 로메르 감독<모어>(More, 1969) 바벳 슈로더 감독<여성 수집가>(La Collectionneuse, 1967) 에릭 로메르 감독<Paris Vu Par>(1964) 에릭 로메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