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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뜬 킬러들의 죽여주는 엇박자 웃음
2001-10-09

<킬러들의 수다>는 두 갈래로 나뉘고 있는 국내 코미디 영화의 흐름을 분명하게 `증언'해준다. <신라의 달밤>이나 <엽기적인 그녀>처럼 마치 속도전을 치르는 듯 코믹스런 말과 행위들을 쏟아내는 전통적인 코미디가 한쪽에 있다. 여기에선 상식의 허를 가볍게 찌르는 상황 연출로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다른 쪽에는 <조용한 가족> <반칙왕>의 김지운 감독이나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의 장진 감독이 만들어온 잔잔한 블랙코미디가 있다. 여기에도 유머어린 말과 행위가 가득한 건 마찬가지이지만, 작용·반작용의 속도를 되도록이면 늦추는 느림의 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또 상식의 전복보다는 가치의 전복에 힘을 쏟아 블랙코미디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장진 감독은 세번째 작품 <킬러들의 수다>에서 후자의 형식미에 지나치리 만큼 `집착'한다. 이어질 대사나 액션을 곧바로 쳐주어야할 것 같은 순간을 1~2초씩 지연시켜 마치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장면을 쉼없이 이어간다. 예술영화의 길게찍기가 생각의 여백을 만들어주기 위한 방편이라면, 이건 웃음의 여백을 주기위한 장치다. 이 때문에 생기는 긴장미는 보는 이에 따라 새로울 수도, 지루할 수도 있지만, 보기좋은 배짱이다.

네 명의 킬러가 있다. 팀의 리더이자 비교적 냉철한 성격의 상연(신현준), 폭약 전문가이고 다혈질이면서도 순수한 정우(신하균), 뛰어난 사격술을 지닌 재영(정재영), 그리고 상연의 친동생이자 팀의 막내인 하연(원빈). 누군가를 죽여달라는 청부를 말끔히 해치우는 살벌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는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박한 하연처럼 궁상맞기까지 하다. 이들을 쫓는 조 검사(정진영) 역시 엘리트 특유의 색깔을 배반한다. 조 검사는 열성적이고 치밀한 것 같은데 번번히 뒤통수를 맞으며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이렇게 전형적인 캐릭터에 균열을 가해 웃음을 만들어내고 이야기의 동력을 만들어낸다. 킬러들이 착해서 살인청부의 불순한 의도에 딴지를 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심정이 있는 한 킬러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작은 풍자의 이야기”라는 감독의 생각은 위태로워보인다. 살인을 청부하는 이들은 증인을 없애려는 깡패 우두머리이거나 귀찮은 애인을 떼어버리려는 철면피, 사랑에 버림받은 여고생과 뉴스 앵커 등이다. 풍자의 전면에 내세우기에는 어쩐지 변죽만 울리는 듯한 인물들이다. 그렇다고 전작들처럼 비애감을 줄 정도의 아웃사이더도 아니다. 이런 아쉬움을 보상해주는 건 조 검사와 킬러의 관계다. 조 검사는 법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무리를 자기 대신 처치해주는 킬러들의 존재를 인정하기로 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 마무리가 상투적이지 않고 근사하다.

장진 감독은 연극계 출신이고 여전히 그쪽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 연출에 많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화면에는 무대처럼 배우의 생기가 감돈다. 김학철, 정규수, 윤주상, 손현주씨 등 쟁쟁한 연극 출신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탓도 있지만, 원빈이나 신현준씨 등 스타의 예전 이미지에 엇나가는 연출 때문이기도 하다. 원빈의 곱상한 이미지나, 신현준의 잔뜩 힘들어간 표정이 무척 달라보인다. 12일 개봉.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