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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즈>(Wonder Boys)
2001-10-11

2000년, 감독 커티스 핸슨

주연 마이클 더글러스, 토비 맥과이어, 케이티 홈스

장르 코미디(워너홈비디오)

의 감독 커티스 핸슨이 마이클 더글러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토비 맥과이어, 케이티 홈스 같은 비싼 배우들과 영화를 만들었는데, 한국에선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비디오로 나왔다. <원더 보이즈>는 커티스 핸슨이 극찬을 받은 전작의 영광에 들떠 있다 실족한 태작이 아니다. 오히려 2000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코미디 가운데 가장 세련되고 정교한 수작이다. 기발한 반전이나 구성의 박진감은 없어도, 보석 같은 대사와 섬세한 캐릭터 묘사가 드문 포만감을 안겨준다.

<원더 보이즈>는 한 대학교수 그래디 트립(마이클 더글러스)과 그의 제자, 그리고 전담 에디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동을 담고 있다. 그래디는 7년 전 격찬을 받은 소설을 발표했으나 그뒤론 어떤 작품도 쓰지 못하고 있다.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지닌 제임스(토비 맥과이어)와 그래디의 집에 세들어 사는 한나(케이티 홈스)가 그를 따르는 제자들. 학장 월터가 자기 집에서 문학인의 밤 파티를 여는 날 아침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 아내는 집을 떠나고 불륜을 맺어오던 학장의 아내 새라는 임신 소식을 전한다. 파티가 벌어지는 동안 그래디는 제임스와 장난스레 학장의 집을 뒤지다 제임스가 애견을 죽이고 비싼 마릴린 먼로의 옷까지 훔치면서 일은 더욱 꼬여만 간다.

<원더 보이즈>는 관습적 유머와 대결하려는 듯한 인상마저 풍기는 노련한 블랙코미디다. 커티스 핸슨 감독은 이 소동기에서 놀랍게도 단 한번의 슬랩스틱도 뽑아내지 않는다. 배우들은 어슬렁거리며 사건의 중심부를 느릿느릿 통과하고, 카메라는 과장된 앵글 하나 없이 인물들의 뒤를 묵묵히 쫓는다. 이 영화엔 이상하게도 비어둔 곳과 생략된 대목이 많다. 그래디의 아내는 그래디가 느끼는 결핍의 첫 원인제공자인데도 한번도 스크린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디는 그녀를 찾아가지만 처갓집은 비어 있다. 한나와 그래디와의 육체적 관계를 예감케 하는 복선도 몇 차례 등장하지만 영화는 결국 둘의 관계를 비켜간다. 제임스는 동성애자 테리와 동침하지만 그의 성 정체성에 영화는 무심하다.

이렇게 슬쩍 비켜가고 비워두면서 <원더 보이즈>는 주말 3일 동안 한 대학교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가지 소동 안에, 글쓰기의 고뇌,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리고 삶의 피로와 위안에 관한 통찰을 곳곳에 담고 있다. 명민한 한나는 한없이 길어진 그래디의 초고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하는 일은 선택이라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으셨네요. 말의 가계도와 치아기록 같아요.”

화려한 연애와 결혼으로만 소식을 전해오던 마이클 더글러스는 그에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지적이고 피로한 작가 역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능숙하게 소화했다. 밥 딜런이 부른 는 오스카와 골든글로브에서 모두 주제가상을 받았다. 허문영 moon8@hani.co.kr